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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배구 산책](48) 배구 여제와 천재는 어디에 숨어 있을까
홍성욱 기자 | 2023.07.04 12:34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한국과 중국의 VNL 경기 장면. (C)수원, 홍성욱 기자

2023 FIVB(국제배구연맹)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 참가한 한국 여자배구대표팀이 12전 전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습니다. 16개 참가국 가운데 최하위 입니다. 한국은 유일하게 승리를 챙기지 못했습니다.

2년 전인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4강이라는 성과를 끌어냈습니다. 믿기 어려운 투혼은 김연경을 축으로 노련한 미들블로커 양효진과 김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3명이 빠진 대표팀은 신장이 낮아졌고, 경험은 일천해졌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완전히 다른 팀이 됐습니다.

세계랭킹 14위로 시작한 새 대표팀은 지난해 월드챔피언십 크로아티아전 승리를 빼면 국제대회 전패를 기록했습니다. 그 사이 세계랭킹은 35위로 내려앉았습니다. 당장 오는 9월에 차례로 열리는 아시아챔피언십, 2024 파리올림픽 예선전, 항저우아시안게임이 걱정됩니다.

대표팀은 김연경이 빠진 뒤 구심점을 잃었습니다. 캡틴 자리를 박정아가 물려받았지만 김연경의 존재감을 대신하기에는 버거웠습니다. 그 누구도 쉽사리 대신할 수 없는 캡틴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성적까지 뒷받침되지 못하며 대표팀의 사기는 내려앉았습니다.

동시에 한국 여자배구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신인 선수들이 주전 자리를 꿰차는 현상은 가물에 콩나듯 합니다. 노장 선수들은 나이 40을 넘겨도 주전으로 군림하다 체력 문제 혹은 부상으로 코트를 떠납니다. 심각한 상황입니다. 신인 또는 신인급 선수들이 주전 경쟁에 나서지 못하기 때문에 노장들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보통 선수들의 기량은 초등학교 5학년 전후로 배구를 시작해 중학교를 지나 고등학교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주목받는 신인으로 성인배구에 유입됩니다. 선수 기량의 발전기 및 성장기는 23세까지입니다. 이후는 노련미를 장착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시기입니다.

23세 이전에 빛을 보지 못한다면 그 선수는 대성할 확률이 매우 적습니다. 자질을 갖췄지만 여러 사정으로 코트에 나서지 못한 경우를 빼면 이런 예는 극히 드물게 나타납니다.

신인드래프트 때 눈물의 지명을 받은 이후 2년 안에 절반 이상이 팀을 떠납니다. 5년 이내에는 대부분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무서운 생태계 속에 국가대표팀의 경쟁력 또한 추풍낙엽처럼 급전직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표팀 주전이 팀에서는 주전이 아닌 경우도 있고, 많은 연봉을 받지만 대표팀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들도 여럿 있습니다. 기현상입니다.

이런 상황속에 우리는 김연경 같은 배구 여제를 다시 기다립니다. 배유나 같은 배구 천재가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냥 기다릴 뿐입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려봅니다.

접근 방법을 바꿔 보겠습니다. 배구 여제와 배구 천재를 전략적으로 육성하며 키워낼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김연경에게 물었습니다. 자신이 대성할 것인지를 언제 알아차렸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연경은 “저는 학창시절 보다는 프로 진출 이후에 느꼈습니다. 팀이 우승을 하고 MVP가 되는 동시에 여러 상을 수상하면서 큰 선수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배유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조금 다른 답이 왔습니다. 배유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시작했어요. 남들과 똑같이 배웠는데 두 단계나 세 단계를 앞서가고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앞으로 내가 몸 관리를 잘하면 큰 선수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선수는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고 학창시절 동안 1년은 함께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고등학교 때부터 주목받은 선수들이었습니다. 김연경은 192cm 키에 리시브와 수비 그리고 2단 연결과 막강한 공격력을 지녔습니다. 여기에 강서브와 블로킹 능력까지 갖춘 올라운드 플레이어입니다. 세계 무대에서 최고 연봉을 받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배구 여제로 한국 배구 중흥을 이끌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배구의 마지막 동아줄 같은 존재입니다. 배유나는 '천재' 수식어가 따라다닙니다. 180cm로 신장은 크지 않지만 센스를 바탕으로 윙스파이커와 미들블로커 역할을 수행합니다. 수비와 연결 능력 또한 일품입니다. 대체 불가능한 선수입니다. 

우리는 김연경 같은 여제를 30년 프로젝트로 키워내야 합니다. 길게 보면 30년 안에 김연경 같은 선수가 나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사이 배유나 같은 배구 천재를 키워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장신 선수 발굴을 도모하는 가운데 제 2의 김연경을 키워내야 합니다. 

우선 배구공을 만지는 초등학교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합니다. 이 계획이 실패하면 한국배구는 크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프로리그 존폐를 걱정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즐겁게 배구를 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 배구 여제와 천재를 바라는 건 요행입니다. 지금은 이런 인재들이 나올 수 있는 바탕을 만들며 밭을 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일선에서 활약하는 대표팀과 프로팀 주전 선수들을 격려하며 응원하는 일을 병행해야 하겠습니다. 

시장 논리에 의해 지금 뛰는 선수들이 고액 연봉을 받는 것은 일정부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겠지만 구단과 연맹은 선수 연봉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지급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효율적인 비율로 초등학교 선수들이 운동하는 터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배구협회 또한 연맹과 힘을 합해 초등학교 협의체나 교육감을 만나 배구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 배구가 다시 일어서러면 20년 혹은 30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 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빠른 시점에서 숨어있던 배구 천재와 여제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래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면 희망의 싹은 자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셰계랭킹은 끝 없이 떨어지고 있고, 1승은 요원한 상황이지만 미래를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배구 여제와 천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지만 그들이 탄생할 토양 만큼은 지금 우리가 가진 힘으로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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