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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피플] 하은주 박사 “강단에 서는 것이 최종 목표다”
홍성욱 기자 | 2016.09.05 13:47
박사학위를 받은 하은주. (C)하은주 제공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2016년 8월 26일 성균관대학교 학위수여식. 사각모를 쓴 무리 사이로 하은주의 모습이 보였다. 이날 그는 체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부 전공은 스포츠심리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93년 시작한 농구를 올해 초까지 24년 동안 계속했던 하은주. 그가 은퇴 6개월 만에 박사가 된 과정이 궁금했다. 농구와 더불어 놓지 않았던 학문의 끈을 어떻게 이어왔는지 그를 만나 들어봤다.

▲ 공부에 재미를 붙인 원인은 ‘오기’와 ‘승부욕’

하은주의 삶 속에 학문의 길은 또렷했다. 농구를 하면서도 학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결코 없었다.

시작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성적이 우수했던 하은주는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지만 6학년 말부터 무릎이 좋지 않아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를 보면서 수술이 급하다고 했다. 결국 오른쪽 무릎 수술 이후 중학교 2학년까지 운동을 쉬게 됐다. 그 때가 본격적으로 책과 가까워진 시기다.

옛 동료들이 운동을 계속 하는 사이, 농구선수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하은주는 오기가 생겨 공부에 매진했다. 승부욕이 발동한 것.

“농구를 잘한다고 주목하던 건 이미 옛날얘기였어요. 당장 눈앞에 제가 보이지 않으니 신경을 쓰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로 뭔가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죽기살기로 했어요. 하다 보니 공부하는 재미가 붙더라고요”라며 하은주는 당시를 떠올렸다.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다시 농구부에 복귀했지만 쓰지 않던 몸을 급격히 쓰면서 곧바로 무리가 왔다. 결국 하은주는 전학 후 졸업했다. 동시에 고등학교 진학을 놓고 고민이 시작됐다.

▲ 갑작스레 오른 일본 유학길

그 무렵 아버지 하동기씨에게 일본의 한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치료시설과 재활프로그램은 물론, 장학금까지 포함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온 것. 일본 전역에서 잘하는 선수들을 모아놓은 학교라는 점도 끌렸다.

결국 하은주는 1999년 나고야에 있는 오오카가쿠엔으로 진학했다. 당시 최고의 가드 오가 유코가 2학년에 재학중이었고, 하은주가 입학한 이후 도카시키 라무 등 다수의 일본 국가대표 선수들이 이 학교를 통해 성인무대로 나왔다.

하은주는 “꼭 일본이 아니라도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더구나 치료해주고, 장학금까지 준다고 해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죠. 부모님과 떨어지는 것 말고는 얻을 게 더 많았다고 생각했어요. 속 편하게 일본어라도 잘 하면 소득이다 생각하고 홀가분하게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 17년 전 기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에 가니 환경 자체가 한국과 판이하게 달랐다. 우선 농구부라고 학교생활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전혀 없었다. 조회부터 종례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다. 청소당번과 주번도 똑같이 했고, 수학여행과 체육대회도 열외가 없었다.

시험기간 2주 전부터 운동 시간이 줄었고, 1주 전에는 농구부 훈련이 전면 중단됐다. 성적 평균이 35점 미만이면 농구부 소속이라도 전국대회 출전이 금지됐다. 낙제가 걱정인 선수들은 농구부 감독의 지시로 훈련 대신 과외 수업을 받았다.

▲ 반에서 1등을 유지하며 인정받은 하은주

하은주는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나고야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는 두꺼운 일한사전밖에 없었다. 지금은 스마트폰 어플로도 소통이 가능하지만 당시에는 전자사전도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학교생활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하은주의 적응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3개월 만에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6개월이 지나면서는 소통이 편해졌다. 읽고 쓰는 게 자유로워지면서 하은주의 성적은 늘 반에서 1등이었다. 어쩌다 2등을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1등을 유지했다.

하은주는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학교생활을 다 하면서 운동을 하니 짧은 훈련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학교생활을 친구들과 함께하면서 나고야돔에 야구 구경을 가기도 했다는 하은주는 “당시 선동열 투수가 직접 던지는 걸 박수치면서 본 기억이 나네요”라며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하은주의 성적이 학교에서 소문이 날 정도로 뛰어나고, 특히 수학 과목에서 만점 행진을 이어가자 고3 때 하은주의 진로가 바뀔 뻔한 상황까지 있었다.

하루는 진학지도 선생님이 하은주를 불렀던 것. 일본의 유명한 회계전문대학이 학교당 1명씩 무시험 특별전형으로 선발을 하는데 담당 선생님이 하은주를 추천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그 때 심각한 고민에 빠졌던 하은주는 “아마 농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회계사로 일하고 있을 것 같아요”라고 옅은 미소를 보였다.

샹송화장품에서 활약하던 하은주. (C)하은주 제공

▲ 샹송화장품 입단과 대학진학

하은주는 졸업 후 다시 진로고민에 빠졌다. 한국으로 돌아갈지에 대한 고민도 했다. 하지만 고교 선배들이 많은 샹송화장품에 입단했다. 선배 언니들이 즐겁게 농구를 하는 광경이 부러웠다.

당시 나카가와 감독이 지휘한 샹송화장품에는 고등학교 선배가 6명이나 있었고, 모두 하은주를 잘 챙겨줬다.

입단과 동시에 대학에도 들어갔다. 하은주는 이 무렵부터 스포츠심리에 대해 공부하고 싶었지만 시즈오카 주변에 학과가 개설된 학교가 없어 도코하단기대학 영미문화학과에 진학했다가 2005년에 4년제인 세이토쿠대 영문학과로 편입했다.

그 사이 샹송화장품에는 이옥자 감독이 부임해 2년 연속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하은주는 농구와 공부 모두에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삶은 굴곡의 연속이라는 말처럼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삶은 다시 한 번 변곡점을 만났다. 어쩌면 생의 고비이자 기회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보다 늘어난 출전시간과 훈련에 무릎 상태가 이전에 비해 나빠졌던 것. 2005-2006 시즌을 마친 뒤 회복이 필요한 상황에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LA스팍스에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으며 또 한 번 선택의 고민에 빠졌다.

소속팀은 하은주가 계속 일본에 머물기를 원했다. 하은주는 미국에 가고 싶었지만 길이 열리지 않자, 고심 끝에 국내 유턴을 결심하고 2006년 여름 신한은행에 입단했다.

▲ 일본을 오가며 대학 졸업, 그리고 석박사과정 입학

하은주는 신한은행에 입단한 뒤에도 계속 세이토쿠대를 다녔다. 4학년 과정만 남아있던 상황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라 생각은 했지만 5년이 넘게 걸릴 줄은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학교에선 선수 신분이라 해도 배려가 없었고, 하은주도 특별한 혜택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시즌을 치르면서 3학점씩이라도 학점을 이수하며 차분히 공부를 이어갔다. 그나마 시즌이 치러지는 시기가 겨울방학과 겹치는 시간이 많아 다행이었다.

비시즌 때는 수업과 시험을 위해 1년에 10번 이상 일본에 건너가 짧게 체류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2월 드디어 꿈에 그리던 졸업장을 손에 넣었다.

하은주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갈망했던 스포츠심리학과를 한국에서 찾기 시작했다. 지인의 주선으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 하은주의 의지와 이전 학교 성적표를 본 교수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은주는 2012년 3월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체육학과 스포츠심리학 전공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금메달을 목에 건 하은주. (C)WKBL

▲ 박사가 된 하은주의 또 다른 미래

석박사 통합과정은 쉽지 않았다. 학문적 깊이를 파고들어야 했고, 스포츠 전반적인 지식과 더불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접근이 필요했다.

하은주는 평소 경기에 나서면서도 기량적인 측면 외에도 심리적인 부분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연구 과제를 수행하거나 학술지를 점검하면서도 현장에서 느낀 부분과 연결시키려 애를 썼다.

결국 그 결과는 한 편의 논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논문 제목은 ‘농구선수들이 지각하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상호의존성 및 조직몰입의 관계’였다.

영문과를 나온 덕분에 박사과정 공부에 큰 도움이 됐다. 미국 자료를 많이 보는데도 수월했고, 토익성적표 제출도 플레이오프가 끝난 뒤, 잠깐 준비해 850점을 넘겼다.

하은주는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스포츠심리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내가 현역 때는 ‘그냥 극복해야지’, ‘개인이 이겨내면 되는 문제야’라며 혼자 해결해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이제는 바꾸고 싶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라며 팔을 걷어붙였다.

하은주의 공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금도 공부에 매진하고 있고, 내년 1월에는 박사 후 과정(Post Doctor)을 위해 미국 버지니아로 떠난다.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을 바라보고 있다.

하은주 박사는 “최종 꿈은 강단에 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 공부에 집중하겠다. 후배들과도 자주 만나며 경기력 향상을 위해 돕고 싶다”라며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양손에는 노트북이 든 가방과 두툼한 전공서적이 들려있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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