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배구 홍성욱의 배구산책
[홍성욱의 배구 산책] 몬트리올 동메달 주역, 캡틴 이순복의 투혼
홍성욱 기자 | 2022.01.27 14:21
1976년 몬트리올 대표팀 단체 사진에서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이순복 주장. (C)이순복 제공

지난 23일 광주광역시 페퍼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의 백미는 경기 전 열린 ‘몬트리올 올림픽 레전드 감사 이벤트’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구기 사상 최초로 메달을 따낸 여자배구 대표팀 레전드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습니다.

빛나는 동메달을 따낸 주역 12명 가운데 7명이 참석했습니다. 주장 이순복을 비롯해 조혜정, 유경화, 장혜숙, 이순옥, 박미금, 백명선 등 레전드들이 코트 위에 섰습니다.

해외에 체류 중인 유정혜(미국), 변경자(이탈리아) 등 2명은 참석하지 못했고, 국내에 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마금자, 정순옥 등 2명도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윤영내 선수는 고인이 됐습니다.

레전드들을 맞이한 건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 4강 주역들이었습니다. 양효진, 김수지, 김희진, 박정아, 염혜선, 이소영, 안혜진, 정지윤 등 올스타에 뽑힌 8명과 중국리그를 마치고 조용한 행보를 이어가던 캡틴 김연경까지 9명이 함께 했습니다. 김연경은 첫 공식행보로 대선배들을 만났습니다.

후배들이 선배 레전드들에게 꽃다발과 1976이 새겨진 올스타전 유니폼을 증정하는 순간, 대형 전광판에는 몬트리올올림픽 당시 흑백사진과 도쿄올림픽 컬러사진이 합성돼 보여졌습니다. 45년 시차가 한 프레임에 담겨 묘한 조화를 이뤘습니다.

껑충껑충 뛰면서 환호와 감격을 누렸던 1976 레전드들도 세월의 무게는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음만은 청춘이었습니다. 관중석으로 이동해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며 과거 추억에 젖은 레전드들 속에서 이순복 주장을 만나 얘기보따리를 풀었습니다.

이순복 주장은 몬트리올올림픽 여자배구 대표팀 최고령 선수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주전 라이트였고, 168cm 단신이었지만 서전트 점프가 68~70cm 사이를 형성할 만큼 탄력이 좋았습니다. 팔도 길어 몬트리올 올림픽 블로킹 14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김연경에게 “우리를 기억해줘서 고맙다 연경아. 우리가 있어 너희들이 있었고, 너희들이 있어 우리가 이 영광스런 자리에 설 수 있게 됐구나”라고 말했습니다. 김연경도 화답하며 대선배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랬습니다. 1976년 그 때 선배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2012 런던 4강에 이어 지난해 열린 2020 도쿄 대회 4강이 가능했습니다.

힘들고 어렵던 시절. 10대 후반과 20대 초중반을 배구 선수로 보낸 이순복의 선수 시절은 훈련과 훈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순복은 “1969년 청소년대표 이후 상비군으로 편성돼 그 멤버가 결국 1976 동메달 결실을 봤습니다. 우리는 상비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이 정말정말 힘들었지만 이번에 메달을 따지 못하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죠. 정말 참아내면서 훈련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서로 눈만 봐도 무슨 플레이를 하려고 하는지 알게 됐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혹독한 훈련은 40여년이 흐른 지금도 쉽게 지워지지 않았나봅니다. 이순복은 “개인적으로 광주에서 45년 만에 코트를 밟았습니다. 그간 이런 저런 행사는 있었지만 코트에 내려온 건 실로 오랜만이었습니다. 꿈인가 싶을 정도였죠. 자랑스러운 후배들과 함께하니 정말 좋았습니다”라고 흐믓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코트를 응시하는 레전드 무리 속에 “언니, 우리랑 후배들이랑 키 차이 좀 봐”라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이어 “키 차이만 나는 게 아니라 모든 게 차이가 나. 여건도 그렇고”라는 대화도 귓전을 때렸습니다.

키도 작고, 환경도 열악했던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우리 선수들은 투혼으로 코트에 섰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이순복은 “당시 국세청 팀이 주축이었습니다. 우승팀이었죠. 그리고 나머지 팀에서 라이트를 뽑아 대표팀을 꾸렸습니다. 태광산업 소속이던 저는 소속팀에선 레프트로, 대표팀에선 라이트로 활약했어요. 69년부터 (유)정혜, (유)경화, (정)순옥이, (조)혜정이와 저까지 5명은 늘 대표팀에서 함께 했고, 한 자리는 (변)경자와 (백)명선이가 뛰었어요. 우리는 빠른 플레이로 서구 팀들을 이겼습니다. 너무나 힘든 훈련이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훈련이었는데 이겨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훈련 도중 모두가 절에 가서 올림픽 메달을 빌기도 했고, 각자 종교에 의지하라며 짧은 외출 시간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이겨 메달을 따야 하는 절박함 속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순복은 서원했습니다.

이순복은 “정말 절박했습니다. 이번이 아니면 메달이 어렵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목소리에 힘을 줬습니다.

한국은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도 4강에 들었지만 당시 준결승전에서 북한에 0-3으로 패해 여자배구는 4강 진출의 기쁨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북한에 패했기에 죄인처럼 귀국해 다시 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4년 동안 마음 속에 칼을 갈았습니다.

이순복 또한 간절함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서원을 했습니다. 이번 올림픽에서 메달을 주시면 앞으로 다른 후배들이 배구를 누리고, 저는 하나님 일을 하겠습니다”라고 서원 배경을 언급했습니다.

올림픽 동메달 이후 이순복은 서원을 실천합니다. 1976년 몬트리올 동메달은 그의 인생을 바꿉니다. 기쁨도 컸습니다. 올림픽 폐막식에선 여자배구 대표팀이 색색의 한복을 입고 관중들의 환호를 받았고, 귀국해서는 김포국제공항부터 시작된 카퍼레이드가 서울시내까지 이어졌습니다. 온 국민의 환호 속에 지냈습니다. 이후 소속팀 태광산업을 우승시킨 이순복은 미련 없이 은퇴했고, 교회에 봉사하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이번 도쿄올림픽 대표팀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는 후배들이 메달 이상을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도 지금도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우리만의 빠른 플레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빠른 플레이를 합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세계로 진출해 빠른 플레이를 전파했습니다. 앞으로 더 힘들겠지만 배구팬 여러분들의 성원이 우리 배구를 지탱해 줄겁니다”라고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동메달을 바라본다는 이순복 주장은 “배구에도 제 신앙에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때도 현지 응원을 갔었어요. 우리 대표팀 감독이 동갑 친구인 김형실 감독이었지요. 지금은 친구가 페퍼저축은행 지휘봉을 들고 있으니 이제 가끔 응원을 가려고 합니다”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온 국민에게 큰 희망과 환희를 안겨준 배구 레전드 이순복 캡틴의 인자한 미소가 긴 여운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투혼 만큼은 모든 배구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올스타전에서 받은 기념 유니폼에 몬트리올 동메달을 올려 기념한 이순복 캡틴. (C)이순복 제공
이순복(왼쪽)이 김연경과 대화를 하고 있다(위). 유니폼과 꽃다발을 증정하는 김연경. (C)KOVO
1976 몬트리올 레전드 7명이 2020 도쿄 대표팀 선수 9명과 지난 올스타전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C)KOVO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성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