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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피플] 이대호의 조력자 정창용, “대호는 이겨내는 선수”
홍성욱 | 2015.09.17 08:12



[스포츠타임스=오사카(일본), 홍성욱 선임기자] 정창용. 그는 동국대 시절 팀을 대학야구 정상에 올려놓은 왼손 투수였다. 어깨가 아파 재활을 위해 찾아온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그는 트레이닝 전문가로 방향을 틀었다전문학교를 졸업할 시기에 이승엽(삼성)과 연이 닿아 6년 반 동안 함께했고, 이후 이승엽이 귀국하는 시점에서 이대호가 일본에 진출하면서 4년째 함께하고 있다. 국내 최고 타자 2명과 함께 11년째 일본 생활을 하고 있는 그를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만나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차근차근 되돌아봤다.

벌써 일본 구단에 몸담은 지 11년째다.

시간이 빨리 흐른 것 같다. 그사이 곡절도 많았지만 선수생활 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면 일본에선 잘 풀린 것 같다.”

2000년 당시 투구는 인상 깊었다. 그때 한대화 감독(KBO 경기운영위원)과 인터뷰를 했는데 제구가 좋다며 정창용의 이름을 여러 차례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돌아봐도 2000년이 최고였다. 한대화 감독님과 김석기 코치님이 정말 나를 좋아하셨다. 당시 3학년이었는데 대학야구 우승을 차지했고, 최우수투수상을 받았다. 프로 팀과도 교감이 있었는데 아팠던 팔꿈치가 다시 아파왔다.”

결국 이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잠깐 당시를 떠올리더니)이듬해인 2001년 초에 4학년이 됐지만 감독님께 말씀드리고 숙소를 나와 광주로 내려갔다. 재활을 받기 위해서였다. 왼쪽 팔꿈치 수술을 한 뒤였다. 두 번째 수술이라 힘들수도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일본은 어떻게 건너가게 됐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일본 재활 트레이너를 찾아갔다. 2002년이었다. 처음엔 힘들었다. 더구나 재활불가 판정을 받은 뒤 암담했다. 아예 일본에서 재활을 배우기로 했다. 3년제 트레이닝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가끔 프로야구를 보러 가 지바롯데에서 활약하던 승엽이 형을 지켜보기도 했다. 일본어도 학교에 들어가면서 배웠다.”

이승엽과는 어떻게 연이 닿았나.

승엽이 형이 요미우리로 가는 시점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비슷한 자리가 만들어졌다. 만나러 갔더니 요미우리의 높은 분들이 함께 있었다. 갑자기 승엽이 형이 사람들을 다 나가라고 하더니 악수를 청하면서 잘해보자라고 했다. 그리고 요미우리에서 생활하게 됐다.”

좋은 시절과 힘든 시절을 함께 보냈다.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그 땐 나도 승엽이 형도 부담감이 있었다. 형은 너무 큰 지지를 받고 있어서 늘 부담스러워했고, 나 역시 형에게 배우고 있는 단계라 별로 힘이 못됐다.”

이대호와 함께하게 됐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원래는 승엽이 형이 한국으로 갈 때 함께 가려고 했었다. 그 때 대호한테 연락이 왔다. 대호는 부산 수영초등학교 후배다. 2008 베이징 올림픽 때 승엽이 형과 함께 있으면서 대호와도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게 대호와의 출발점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좌우거포와 함께하게 됐다.

“(웃음)선수 때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는데 일본에 와서는 일이 잘 풀린 것 같다. 승엽이 형 때는 나도 아는 사람이 없어 고생했었지만 대호가 건너올 시기에는 일본야구 시스템이나 분위기를 알고 있었고, 지인도 많아졌다.”

이대호는 이승엽보다 적응이 수월했나.

둘 다 일본과 야구라는 면에서 적응하는 데 힘이 들었을 것이다. 선수의 고충, 특히 내면의 고충은 선수밖에 모른다. 다만 승엽이 형 때는 나도 일본구단에 적응하는 상황이었고, 대호 때는 내가 적응된 상황이라 역할을 수행하는 면에서는 훨씬 나은 면이 있었다. 이를테면 대호가 힘들 때 동료 선수들이나 코치들과 둥글게 지내면서 커버도 치고 했지만 승엽이 형 때는 그런 게 없었다.”

결국 야구, 그리고 고독함과 싸워야 한다.

그렇다. 부담감이 크다. 그게 마음고생으로 이어진다. 한국에서와 다른 마음고생 말이다. 여기에 언제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고독함이 짓누른다. 그 무게는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이대호를 지켜보면 그런 측면에서 어떤가.

힘들어도 잘 이겨낸다. 여긴 한국이 아니다. 지금은 외국인선수다. 구단에서 기대하는 게 있다. 매일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더구나 대호는 우승팀 소프트뱅크에서 가장 연봉을 많이 받는 선수라 부담도 더하다. 이걸 넘어서고 이겨내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대호가 잘 이겨내고 있다.”

우승을 여러 차례 함께했다.

승엽이 형 때 두 번 우승했고, 대호와도 작년에 우승에 이어 올해도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승은 모든 걸 잊게 하는 것 같다(웃음).”

이 때 삼성에서 활약했던 소프트뱅크 에이스 투수 릭 벤덴헐크(일본에선 반디라고 부른다)가 지나가다 인터뷰 광경을 보더니 니 뭐하노라며 농담을 던졌다. 정창용은 니는 준비 안하노라며 받아쳤다. 소프트뱅크 동료들까지 뭐하노를 따라했다. 주변이 웃음바다가 됐다.

일본 구단에서 10년 이상을 보냈다. 더 오래 지낼 수도 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나.

대호가 일본에 있을 때까지는 함께 할 것이다. 이후에는 일본 구단에서, 특히 양대리그 최고 팀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한국 구단에서 일하고 싶은 계획이 있다. 트레이닝 분야 혹은 스카우트 같은 역할도 해보고 싶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사진=이대호와 정창용. 홍성욱 기자]

홍성욱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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