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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박세리, 눈물의 라스트 퍼팅...정든 필드와 작별
홍성욱 기자 | 2016.10.13 21:42
박세리가 마지막 18번 홀 그린에 오르며 갤러리 환호에 답하고 있다. (C)하나금융그룹/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본부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박세리.

‘골프’ 하면 한국인들이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18년 전인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하얀 맨발로 샷을 날리며 우승을 거머쥔 그의 환호하는 모습은 국민 모두에게 큰 자신감을 줬다. 당시는 국제금융위기로 경제가 휘청거려 허리띠를 졸라매던 암울한 시기였다.

박세리의 세계재패는 우리나라 골프역사를 둘로 나눈 큰 사건이었다. 이후 박세리의 활약은 거침이 없었고, 그의 뒤를 따르려는 이른바 ‘세리 키즈’는 이미 현역으로 성장했다.

LPGA투어 25승이라는 놀라운 성과에 아시아 최초 명예의 전당 입성이라는 큰 공적을 세운 그는 28년 동안 손에 꼭 쥐었던 골프 클럽을 13일 선수로는 마지막으로 잡았다. 오랜 팬이 캐디로 나서 정겨움을 더했다.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골프클럽 오션코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는 박세리는 현역 마지막 라운드였다. 동반 플레이어는 디펜딩챔피언 렉시 톰슨(미국)과 리우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펑샨샨(중국).

스코어는 큰 의미가 없었다. 1번 홀 티잉그라운드에서부터 울먹인 박세리는 필드와의 작별에 그간 거닐어온 험로가 주마간산처럼 지나갔다.

팬들의 뜨거운 응원 속에 한 홀 한 홀 샷을 이어간 박세리는 15번 홀에선 버디를 잡아내기도 했다.

마지막 18번 홀. ‘열린 은퇴식’이 진행됐다. 이미 젖은 눈이 된 박세리는 ‘티샷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감정이 북받친 상태였다. 그의 눈물은 아름다웠다. 승자의 눈물이었고, 영광의 눈물이었다.

‘저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중략)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필드에 울려 퍼진 ‘상록수’의 가사는 박세리의 인생을 축소시켜 놓은 듯 했다. 필드는 잠시 숙연해졌다.

박세리는 이렇게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며 제 2의 인생으로 나아갔다. 다음은 박세리와 대회 본부와의 일문일답.

▲ 마지막 대회를 마친 소감은.

“오늘 연습하고 티 박스에 오르기 전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1번 홀 티박스에 올라갔는데 많은 팬들이 ‘세리 사랑해’가 써있는 수건을 목에 두르고 계셨다. 눈물이 날 줄 몰랐는데 눈물이 났다. ‘수고했다’고 하시면서 많이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그 때부터 은퇴라는 사실이 실감 났다. 팬들도 평소와 달랐다. 시합 중에 평소처럼 플레이 하다가도 울컥울컥 했던 것 같다. 마지막 18번 홀 티에 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티샷을 못할 뻔 했다. 이렇게 많은 감정이 교차할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은퇴식 때는 너무 좋았다. 우승한 것 보다 더 기뻤다. 최고의 순간이었다. 쉽지 않았지만 무사히 마무리하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 오늘 팬이 캐디를 했다.

“오래 전부터 최고의 팬이었다. 나를 항상 응원해주신다. 1년에 한 번이지만 이 대회에 경기하러 오면 꼭 오셨다. 그 언니도 골프 치는 내 모습이 익숙할 텐데 이제 그 모습을 못 봐서 섭섭해 했다. 첫 홀부터 같이 울었다. 언니가 ‘우리가 5년만 젊었으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했을 텐데, 미국에도 갔을 텐데’하며 아쉬워했다. 시원섭섭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미국 아칸소에 사는 팬이 있는데 일부러 미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응원하고 계시다. 정말 감사하다. 내가 참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다.”

▲ 공식적인 선수 생활을 마치게 된다. 어제 잠은 잘 잤는지 궁금하다.

“잠은 계속 잘 못잤다. 리우 올림픽 후 은퇴가 가까워져 오면서 계속 그랬던 것 같다. 어젯밤은 더 특별히 심란했다. 시합을 앞두고 있는 생활이 익숙해져 있어서 그랬는지 은퇴가 실감이 나진 않았다. (은퇴가)갑작스러운 일이 아닌데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아무 생각이 없었고, 너무 많은 팬들이 와줘서 기쁜데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은퇴식 하면서 많이 감동을 받았다. 운 기억 밖에 없다. 어떤 선수도 나처럼 행복한 은퇴식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너무나 행복했다. 오늘밤, 아니 이번 주 내내 실감이 나지 않을 것 같다.”

▲ 내일 2라운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진 않을지.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성적이 좋으면 마지막 라운드까지 하지 않겠냐고 하셨는데, 나는 정해진 대로 아쉬움 없이 내 결정에 따를 것이다. 내일 치는 건 아닌 것 같다(웃음).”

▲ 은퇴식에서 아버지와 긴 포옹을 했다. 어떤 기억이 있나.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잘 알고계시리라 생각한다. 나도 아버지 마음을 알 것 같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막상 은퇴를 했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마음이실 거라 생각한다. 좋을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있었다. 아버지 덕에 이렇게 성장한 것 같다. 어렵게 골프를 시작했지만 가족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내 인생, 골프 선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나의 심장 같은 분이셨다. 골프를 계속하고 성공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도 가족 때문이다. 너무나 감사하다.”

▲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을 돌아보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골프계에 돌풍을 일으킨 것과 다름없다. 연장전에서 헤저드에 공이 빠졌던 상황에서 그때와 다르게 플레이했다면 어떤 결과가 됐을지 생각해봤는지.

“그 때는 잃을게 없다고 생각했고, 즐기자고 생각했다. 나는 모르는 나라에서 온 신인이었고 그 주에 좋은 경기를 했다고 생각했다. US여자오픈 우승이 꿈이었는데 연장전을 위해 18번 홀에 갔을 때 절반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라 생각하고 순간에 최선을 다했다. 그 때 헤저드에서 다르게 플레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4라운드를 마치고 공동 선두였을 때 그때까지 좋은 경기를 해왔다고 생각했다. 공이 헤저드에 빠졌을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에게 도전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성공 가능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해보고 아니면 다음에는 그렇게 플레이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그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박세리는 없었을 것이다.”

▲ 본인은 은퇴 하지만 ‘세리키즈’들이 LPGA투어에서 활약하고 있다.

“너무 든든하다. 만약 지금의 ‘세리키즈’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국 골프도 없었을 것 같다. 나로 시작했지만 나로 끝나지 않았으면 생각했다. 앞으로 나를 보고 시작한 선수들이 ‘세리키즈’로 불리지만 또 다른 선수의 키즈가 많이 나와서 오랫동안 한국 골프를 이끌어주었으면 한다.”

박세리 은퇴식에 함께 한 박찬호. (C)하나금융그룹/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본부

▲ 은퇴식에 많은 사람들이 왔는데, 특히 오늘 박찬호 선수가 한다.

“박찬호 선수와 내가 미국에 진출한 건 아마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90년대는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외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쉬운 선택이 아닌데 둘 다 새로운 도전을 했다. 이후 서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후배들이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구자라는 것은 쉽지 않다. 둘 다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 있는데 후배들이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우리 둘 다 이제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방향으로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고 서로 돕는 스포츠인이 되고 싶다.”

▲ 이 대회 초대 챔피언이다. 은퇴 경기도 했다. 메인스폰서 대회이기도 하다.

“처음 LPGA투어 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했는데 그 대회에서 내가 초대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오늘 나의 메인 후원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은퇴 경기를 했다. 시작과 끝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특별한 것 같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스폰서십을 하고 있는 등 골프를 위해 많은 후원과 노력을 하고 있다. 단단하고 훌륭한 회사 소속으로 선수로써 마지막 경기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감사드린다. 내가 은퇴 후 후배 선수들을 위해 이루고 싶은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하다. 프로골퍼 박세리가 아닌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박세리로 배워가며 노력하겠다. 지금처럼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또 다른 좋은 일로 뵙기를 바란다.”

열린은퇴식에 함께 한 어린이들. (C)하나금융그룹/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본부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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