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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배구 산책] 착시 현상
홍성욱 기자 | 2023.10.10 10:53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여자배구 대표팀. (C)AVC

한국 남자배구와 여자배구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남자대표팀과 여자대표팀 모두 4강에 오르지 못한 가운데 순위결정전으로 대회를 마무리 했습니다.

전조증상은 이미 있었습니다. 남자대표팀은 7월 타이완에서 열린 FIVB(국제배구연맹) 챌린지컵에서 바레인에 패하며 3위를 기록했습니다. 우승이 간절했던 대회였습니다. 이어 이란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십에서도 최종 5위에 머물렀습니다.

여자대표팀은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챔피언십에서 카자흐스탄에 패하며 최종 6위를 기록했고, 유럽과 미주 팀까지 합세한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과 올림픽최종예선은 전패였습니다.

이미 남녀 대표팀은 아시안게임 이전 올해 데이터로 볼 때 메달권 실력이 아니었습니다. 실력에서 밀리는데 정신력으로 이겨내거나 운을 바라는 건 요행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배구는 중국, 일본, 태국보다 아래입니다. 아시아 중위권이 현주소입니다.

한국 배구가 이번 아시안게임 성적표에 비통해 하는 건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이라는 굵직한 성과 직후 2년 만에 나타난 현상이라 더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 4강 이후 이미 여자대표팀의 추락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연경과 함께 양효진과 김수지까지 대표팀에서 동반 은퇴하면서 구심점이 흔들렸고, 국제대회 경험과 높이에서도 전혀 다른 팀이 됐습니다.

새롭게 구성된 현재 대표팀 선수들은 부딪히고 깨지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남자대표팀은 이미 국제무대와는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첼린지컵이 중요한 발판인 상황입니다.

대한배구협회는 아시안게임 직후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2028 LA올림픽과 2032 브리즈번 올림픽에 대비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공청회도 열고, 새로운 감독 선임 절차도 체계적으로 진행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는 14일부터는 한국배구연맹 V-리그 대장정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V-리그는 대표팀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는 리그일까요.

몇몇 선수들에게는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선수들에게는 도리어 발목을 잡는 리그이기도 합니다. 구조적으로 그렇습니다.

리그는 클럽팀 간의 순위와 경쟁, 그리고 우승이 목표입니다. 이를 위한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국제대회에서 통하지 않는 플레이라도 이기기 위해서는 해야 합니다. 여기서 대표팀에 다녀 온 선수들은 고민하게 됩니다.

대표팀에서는 득점이 아니었지만 V-리그에서는 득점이 되는 플레이를 반복해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쉬운 길을 택해야 효율적으로 경기를 풀어내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대표팀 선수들은 국제대회보다 실력이 쳐지는 국내리그에 익숙해진 가운데 비시즌이 시작되면 또다시 큰 도전의 길에 나서게 됩니다. 밀물과 썰물 사이에서 표류하게 되는 겁니다.

또한 윙스파이커의 경우, 20점대에서는 대부분 외국인선수가 주연으로 나서다보니 우리 선수들은 조연 역할 뿐입니다. 올 시즌부터는 아시아쿼터까지 등장했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설 자리는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들러리 신세입니다.

그렇다면 V-리그는 변화가 필요합니다. 국내 선수들이 뛸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가운데 외국인선수를 확충해야 합니다. 그래야 국내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 선수만 나서는 대회나 또 다른 작은 리그를 만들수도 있고, V-리그 정규 경기에서도 특정 세트나 특정 점수 구간에서 국내선수만 뛰는 시스템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방법론적 문제입니다.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리그에서 주전도 아닌 선수가 대표팀에서 주전으로 나서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경험은 대표팀에서 쌓고 국내리그에서는 웜업존에 있습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현재 대표팀의 성적 하락 이유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경쟁력 약화’입니다. 엘리트 시스템에서 배구를 하는 선수층이 얇다보니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아주 특별한 경쟁 없이 프로까지 와서 지냅니다.

공부를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간 비율은 10%도 되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나라 고교나 대학 배구팀의 프로 취업률은 이보다 훨씬 높습니다. 50%에 육박하기도 합니다.

일본은 생활체육의 힘으로 엄청난 경쟁 속에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확보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제무대에서 신장의 열세를 극복하고 있습니다.

태국은 국가대표 소집기간을 늘리면서 조직력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럽과 미주 팀에게는 높이에서 열세이고, 일본과 태국에는 스피드에서 밀립니다.

지금의 구조에서는 앞으로도 쉽게 올라설 수 없습니다. 학교 체육 속에 있는 선수들은 수업을 듣고 운동을 병행하다보니 이전과 같은 훈련량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모든 배구인과 배구 관계자가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표팀의 발전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나라 배구를 과대평가하고 있는지 돌아볼 때입니다. 눈높이를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현실을 바라봐야 합니다.

올해 개인적으로 튀르키예, 바레인, 타이완, 일본, 폴란드에서 남녀 대표팀과 클럽팀 경기를 수십차례 이상 직관하다보니 우리 대표팀에 대한 눈높이가 자연스럽게 내려왔습니다. V-리그 구단의 수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무를 보지말고 숲을 봐야 합니다. 착시 현상에서 먼저 빠져나오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바라보는 곳을 바꾸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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