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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한국 여자배구 선수단. (C) 장윤희 MBC 해설위원 제공 |
[스포츠타임스=김가을 기자] 팬들을 울고 웃긴 감동의 순간 뒤에는 특별한 얘기가 숨어있다. 그것은 땀과 아픔으로 가득찬 눈물 스토리일 수도 있고,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스포츠타임스에서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한 레전드의 기억을 통해 숨은 얘기를 전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기억 저편으로 물러났던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꺼내본다. <편집자 주>
Story 3. ‘일본 킬러’ 이도희, 한국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순간
5세트 14-11. 이도희의 토스를 받은 장윤희가 상대 코트를 향해 강력한 코트를 내리 꽂은 순간, 태극낭자들은 한 곳에 모여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한일전 승리 확정 순간의 일이다. 이제는 2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이도희 SBS스포츠 해설위원 기억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이도희 위원에게는 현역 시절 두 개의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첫 번째는 컴퓨터 세터고 두 번째는 일본 킬러였다.
숭례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배구공을 잡은 이도희 위원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세터로 전향하면서 꽃을 피웠다. 이도희 위원은 일신여상 시절 정확한 토스로 118연승을 이끌며 이름을 알렸다. 동시에 ‘컴퓨터 세터’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실업 진출 후에도 활약은 이어졌다. 이도희 위원은 1985년 호남정유 배구단에 입단한 뒤 팀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호남정유는 92연승을 달린 것은 물론이고 9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 명문 구단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도희 위원은 소속팀에서의 활약과는 달리 대표팀에서의 활약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당시 한국은 이운임과 임혜숙, 김경희를 번갈아 투입하는 ‘3인 세터 체제’를 활용하고 있었다. 선배들의 활약 앞에 이도희 위원의 자리는 없었다.
태극마크 기회는 1991년 찾아왔다. 실업 6년 차 때 일이다. 1988 서울올림픽과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을 치른 한국은 주축 선수들의 은퇴와 함께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도희 위원은 새 얼굴로 대표팀에 뽑혔다. 이후 5년 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누볐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도희 위원은 배구 팬들 기억 속에 ‘일본 킬러’로 깊이 새겨져 있다. 1994 히로시마아시안게임 한일전에서 보여준 강렬한 토스 덕분이다.
히로시마아시안게임은 한국을 포함해 일본과 중국 등 6개국이 참가했다. 풀리그 형식으로 실력을 겨뤄 1위 팀이 금메달을 목에 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당대 최강으로 불리던 중국과 홈팀 일본이 금메달을 두고 다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은 예상을 깨고 150분 혈투 끝에 중국을 세트스코어 3-2로 꺾고 기세를 올렸다. 3차전에서 약체 몽골을 세트스코어 3-0으로 완파한 한국은 4차전에서 숙명의 라이벌 일본과 맞대결을 펼쳤다.
홈팀 일본의 텃세는 생각보다 심했다. 일본은 한국팀 훈련장을 숙소와 먼 곳에 떨어뜨려 놓았다. 최악의 경우 훈련 시간보다 이동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도희 위원은 “개최국에서 지정해준 훈련장이 숙소와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훈련장에 가서 훈련을 하고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이동 시간 때문에 오히려 체력 문제가 발생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은 훈련장 대신 선수촌 내 공원에서 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도희 위원은 “선수촌 안에 휴식 공간이 있다. 우리 팀은 그 곳에서 서브리시브를 받는 등 훈련을 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텃세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도희 위원은 “일본인 심판이 선심으로 들어왔다. 1세트 때 우리 공격이 세이프됐는데 아웃을 들었다. (장)윤희랑 몇몇 선수들이 항의할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텃세를 이기지 못한 한국은 1~2세트를 연달아 내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벼랑 끝에 선 한국은 3세트를 앞두고 굳은 각오를 다졌다.
이도희 위원은 “한국 여자배구는 태릉선수촌에서도 유명한 연습벌레였다. 우리는 정말 훈련을 많이 했다. 선수들끼리 ‘그동안 훈련한게 아까워서라도 꼭 이기자’고 말했다. 만약 일본에 패하면 현해탄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코트에 들어섰다”고 전했다.
매서운 각오는 코트 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은 일본이 방심한 틈을 타 연거푸 공격을 성공했다. 15-3으로 손쉽게 3세트를 챙긴 한국은 4세트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하며 4세트를 거머쥐었다.
세트스코어 2-2로 팽팽하게 맞선 마지막 세트. 이도희 위원은 “일본이 윤희 등 우리나라 레프트진을 집중적으로 블로킹하는 것 같았다. 이를 역이용했다. 상대 블로킹이 레프트에 몰리는 것을 보고 중앙과 라이트 공격수를 활용해 경기를 풀었다”고 설명했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한국은 중앙과 라이트 공격에 이어 레프트 장윤희의 마지막 스파이크를 앞세워 5세트를 15-11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세트스코어 3-2로 극적인 역전승을 완성했다.
또한 한국은 일본전 승리로 대회 4전 전승을 달리며 선두 자리를 굳게 지켰다. 마지막 경기 상대인 대만은 한국과 실력 차이가 컸기 때문에 사실상 우승 확정. 실제로 한국은 대만을 꺾고 5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도희 위원은 “한일전 때 얼마나 떨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일본 텃세에 오히려 독기를 품고 잘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일본 킬러’ 이도희 위원의 경기 조율 덕에 한국 여자배구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전 승리로 아시안게임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금빛 역사를 만들었다.
김가을 기자 spec2@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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