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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의 기억] 이숙자, 배구 인생 끝자락에 만난 ‘최고의 경기’
김가을 기자 | 2016.05.08 01:57
2012 런던올림픽 한국 여자배구 선수단. (C) 이숙자 제공

[스포츠타임스=김가을 기자] 팬들을 울고 웃긴 감동의 순간 뒤에는 특별한 얘기가 숨어있다. 그것은 땀과 아픔으로 가득찬 눈물 스토리일 수도 있고,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에피소드일 수도 있다.

스포츠타임스에서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한 레전드의 기억을 통해 숨은 얘기를 전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기억 저편으로 물러났던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 번 꺼내본다. <편집자 주>

Story 2. ‘배구여신’ 이숙자, 올림픽 4강 이끈 절묘한 토스

“이탈리아전이 없었다면... 팬들이 ‘이숙자’라는 세터가 있었는지 기억할까요.”

이숙자 KBSN 해설위원은 동료 선수들도 부러워하는 배구 인생을 걸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현대건설에 입단한 뒤 무려 7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비록 신인 시절 대선배 그늘에 가려 무명 시절을 겪었지만, 알을 깨고 나온 이숙자 위원은 그 누구보다 훨훨 날았다.

그는 2012-2013시즌 팀 우승과 동시에 길었던 배구 선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와 그랑프리 세계여자배구대회, 런던올림픽 등에서 절묘한 토스로 한국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숙자라는 이름이 팬들 기억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2012 런던올림픽 이탈리아전이다. 이숙자 위원 스스로 ‘인생 경기’라고 꼽을 정도다.

사실 이숙자 위원이 런던올림픽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1년 허리 시술을 받은 탓에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

그는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구단에도 은퇴 의사를 밝힌 상태였죠. 그러나 올림픽은 꿈의 무대고, 동료 세터 (김)사니(IBK기업은행) 역시 베테랑이었기에 부담을 덜 수 있어서 도전하게 됐어요”라며 웃었다.

실제로 이숙자 위원은 올림픽 최종예선과 본선에서 주축으로 뛰기보다는 교체 선수로 코트를 밟았다. 대신 뒤에서 동생들을 독려하며 맏언니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덕분에 한국은 ‘죽음의 조’라고 불리던 B조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하며 8강에 올랐다.

문제는 준결승 문턱에서 만난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당시 국제배구연맹(FIVB) 랭킹 4위로 한국(15위)보다 한수 위 전력으로 평가됐다.

또한 한국은 올림픽을 포함한 국제 대회에서 이탈리아에 8승 11패로 열세에 놓여 있었다.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세트스코어 3-2 승리 이후 국제 대회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상황이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한국은 주포 김연경이 상대 블로킹에 번번이 막히며 1세트를 18-25로 힘없이 내줬다. 설상가상으로 세터 김사니가 감기에 걸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결국 한국은 이숙자 카드를 꺼내들었다.

코트에 들어선 이숙자 위원은 센터와 라이트 공격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기를 풀었다. 앞으로 빼주는 토스를 선호하는 김사니와는 전혀 다른 플레이를 선보인 것. 이숙자 위원은 센터 정대영과 라이트 황연주의 플레이를 살리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이탈리아가 사니 토스를 철저하게 분석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제가 들어가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겠죠”라며 웃었다.

상대 허를 찌르는 토스로 2세트를 챙긴 한국은 세트스코어 1-1 균형을 맞췄다. 제 역할을 해낸 이숙자 위원은 2세트 종료와 동시에 벤치로 들어섰다.

바로 그 순간. 김형실 감독을 비롯해 김사니 등 동료들이 이숙자 위원을 막아섰다. 이탈리아를 흔들기 위해서는 이숙자 위원이 남은 경기를 책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숙자 위원은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려서 못 뛰겠더라고요. 올림픽이라 떨리는 것도 있겠지만, 그동안 교체 멤버로 들어갔던 터라 경기 체력이 부족했거든요. 다들 ‘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서 다시 한 번 코트에 들어섰어요”라며 돌아봤다.

그러나 굳은 마음과 달리 급격히 떨어지는 체력은 어쩔 수 없었다. 이숙자 위원은 “서브를 넣고 자리로 돌아오는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졌어요. 동생들이 ‘언니는 체력 아껴야하니까 파이팅도 외치지 마’라고 농담할 정도였으니까요”라고 덧붙였다.

동료들의 믿음은 이숙자 위원도 펄펄 날게 만들었다. 특히 위기 순간 동료들이 건네준 조언은 그에게 큰 힘이 됐다.

이숙자 위원은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에 (김)연경이에게만 공을 올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상대가 다 막아내더라고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벤치에서 사니와 (한)유미가 사인을 보내주더라고요. 코트 안에서 보지 못한 것을 동료들이 분석해서 알려준거죠”라고 말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이탈리아전에 나선 한국은 이탈리아에 세트스코어 3-1 역전승을 거두며 준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2012 런던올림픽 4강 주역 이숙자 위원은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제2의 배구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 런던올림픽 이탈리아전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는 “만약 이탈리아전이 없었다면 팬들이 이숙자라는 세터를 기억할까 싶어요. 이탈리아전은 배구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제 인생 최고의 경기에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2012 런던올림픽 한국 여자배구 선수단. (C) 이숙자 제공

김가을 기자  spec2@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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