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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R] ‘승패는 다음 문제다’ 흥국생명 vs IBK기업은행
홍성욱 기자 | 2021.11.23 08:50
사진=KOVO 제공

배구 코트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우리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흥미로움, 그리고 열정을 되살아나게 하는 소중한 공간이 바로 코트다. 그렇기에 이를 지켜보는 팬들은 승부에 관심을 갖는다.

단서도 붙는다. 승패는 정정당당한 승부일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23일 오후 7시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펼쳐지는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의 2라운드 맞대결에서 우리는 정당한 승부의 세계를 맛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회의적이다. 이유는 IBK기업은행 때문이다.

이 팀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정상적으로 경기에 나설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경기에 나선다. 그리고 이기려고 한다.

물론 이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의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이겼다한들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땀을 흘리고 모든 노력을 경주해 플레이를 완성해가면서 얻은 승리 혹은 패배는 모두 값지다. 승자도 패자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IBK기업은행은 그럴 자격이 없다. 코트에 당당하게 설 자격을 잃었다.

IBK기업은행은 지금 감독이 없다. 서남원 감독이 지난 20일 현대건설전 이후 구단의 경질 통보를 받았다. 윤재섭 단장 또한 동반 경질됐다.

현재 선수단은 김사니 코치가 감독 임무를 대신하고 있다. 구단은 정식보도자료도 내지 않고, 구단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이를 알렸다. 김사니 코치의 임시 감독직 수행과 관련해 현재 감독 및 수석코치의 동시 부재를 이유로 들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했다. 신임 감독이 선정될 때까지 일시적 수행이라고 했다.

과연 이 문구를 그대로 믿어도 될까.

믿을 수 없다. IBK기업은행은 조완기 수석코치가 팀을 떠난 이후 김사니 코치가 경기중 수석코치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김사니 코치는 팀을 이탈하기에 앞서 서남원 감독을 만나 수석코치의 역할을 계속 수행하지 못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이후 IBK기업은행의 경기에서 수석코치가 경기 중 수행하는 역할은 안태영 코치의 몫이었다. 김사니 코치는 비중이 적은 다른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IBK기업은행은 감독 및 수석코치의 동시 부재 이유로 팀을 이탈했던 김사니 코치가 임시 감독직을 담당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서남원 감독 체제에서 수석코치 역할도 못하겠다고 했던 코치가 아예 감독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발표했다. 지금 이 상황이 IBK기업은행의 현주소다.

오늘 팬들이 대할 것으로 보이는 IBK기업은행은 위화도 회군 이후 점령군처럼 돌아와 정권을 잡은 이성계와 조민수 같은 수장이 지휘하고, 그를 따르는 일부 무리가 섞인 팀이다.

이성계와 조민수의 회군은 결국 성공했지만 조송화와 김사니의 이탈 이후 복귀는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IBK기업은행이 언론의 십자포화를 맞지 않았다면 팀을 이탈했던 조송화의 복귀, 김사니 감독대행 체제는 굳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의 맹공 이후 IBK기업은행 내부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됐다. 많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도 여전히 남아있다. 구단이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선수단의 항명 상황을 조사하지 않는다면 일은 점점 확대될 것이고, 결국 언론을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일이 더 커지기 전에 구단이 알아서 잘 처리하길 권면한다.

지금 구단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서둘러 조송화의 임의해지를 SNS 계정에 올려 알리느라 절차에도 구멍이 생겼다. 임의해지는 선수의 자발적 신청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서면으로 정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강조하지만 지금 IBK기업은행은 눈 앞에 불을 끄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차피 감독도 내쳤고, 단장도 내쳤다. 팀을 이탈한 선수까지 임의해지키로 내부적으로 결정한 상황이다. 또한 팀을 이탈한 코치도 임시로 선수단을 이끈다고 했으니 곧 사의가 수용될 것이다.

그렇다면 IBK기업은행 입장에선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팀이 완전하게 새출발할 수 있는 지점에 다다른 것이다. 여기서 팀의 재창단을 시작한다면 작은 격려를 받을 수 있다. 격려는 점점 커지고 마침내는 박수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이불을 꺼내 환부를 덮으려 한다면 몇 배나 되는 화를 자초하게 된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IBK기업은행 내부의 몫이다. 행원부터 행장에 이르기까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구성원들이 힘을 합해 IBK기업은행 알토스 배구단의 새 역사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더 이상은 기강이 무너지고, 계통이 무시되는 팀이어서는 안된다.

오늘 경기 승패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항명이, 특히 실패한 항명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지를 남은 구성원들은 똑똑히 알아야 한다. 아직 구단의 징계는 끝나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더 많은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 해묵은 갈등과 불필요한 구단 내 잡음을 이제는 끝낼 때가 왔다. 수년 동안 이어졌던 악행이다. 오늘 경기보다는 이후가 더 중요하다. 

승부의 세계 속에는 감춰진 부분이 많다. 드러내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왔다. 모든 것을 한 번 끄집어내고, 정리할 때다. IBK기업은행은 지금 이런 상황에서 경기에 나선다. 상대는 4연패 부진에 빠진 흥국생명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단두대 매치였겠지만 지금은 그저 경기가 큰 사건없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가 끝나면 새 날이 올 것이다. 오늘은 조금 괴롭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다. 다만 오늘 뼈아픈 과정 또한 감내해야 한다. 이 과정 또한 소중하다. 오늘 경기 만큼은 승패가 다음 문제다.

다만 훗날 배구 역사가 오늘의 교훈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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