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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미국 축구대표팀의 공격수 폴라린 발로건(AS모나코)의 북중미 월드컵 출전정지 징계가 철회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이 조직적으로 대응에 나선 것으로 6일(현지시간) 전해졌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발로건 징계 철회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통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신속한 대응 속에서 이뤄졌다며 그 막후 움직임을 보도했다.
발로건은 지난 2일 미국-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32강전에서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아 레드카드를 받았다. 이에 따라 그는 6일 벨기에와의 16강전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경기 직후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 당국자들은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이를 두고 "월드컵 96년 역사상 가장 대담한 계획 중 하나"라고 WSJ은 전했다.
백악관은 해당 판정을 국가적 사안으로 바꿔 결과를 뒤집으려 했고,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이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봤다고 한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과 백악관 월드컵 태스크포스(TF) 책임자인 앤드루 줄리아니는 이번 조치가 정부 차원의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앤드루 줄리아니는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전 뉴욕시장인 루디 줄리아니의 아들이다.
이들은 경기 당일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여러 차례 통화했다. 출전 정지 조치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미 대표팀의 8강 진출 가능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대응 필요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징계 철회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후 행정부는 법적 대응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유력 변호사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발로건이 상대 선수의 발목을 밟은 행위가 레드카드 사안인지 판단하는 과정에서 FIFA가 슬로모션 화면을 활용한 점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들은 곧바로 미국축구협회 관계자들에게 이 같은 계획을 설명했다.
경기 후 미국축구협회가 해당 판정에 대해 규정상 항소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인판티노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2016년부터 FIFA를 이끈 인판티노 회장은 재임 기간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다져왔다. 그는 백악관 집무실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으며, 마이애미에서 열린 이종격투기(UFC) 경기부터 이집트에서 열린 가자 평화 정상회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판티노 회장에게 발로건 판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했다. 인판티노 회장은 사안을 살펴보겠다고 약속했으나, 판정 번복을 약속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후 다시 통화할 때, 인판티노 회장은 출전 정지 처분이 철회될 것이라고 말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결국 FIFA는 징계위원회가 재량을 발휘해 제재를 검토·조정할 수 있도록 한 규정 제27조를 적용해 발로건의 출전정지 집행을 1년 유예한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트루스 소셜에 "옳은 일을 해 거대한 불의를 바로 잡은 FIFA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폴라린 발로건의 징계 유예 처분 결정이 나오고, 이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개입 사살이 전해지자 파장이 크게 일고 있다. 당장 미국과 16강전을 앞둔 벨기에는 물론 유럽 다른 나라에서도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축구를 정치로 오염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전직 축구 심판인 막심 프레보 벨기에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6일(현지시간)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진짜로 전화 한 통이 이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이끌어냈다면 축구와 스포츠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사회당은 성명에서 "부끄러운 줄 알라. 돈이 좌우하면 월드컵은 모든 신뢰를 잃는다"며 "트럼프를 기쁘게 하려고 규정을 바꾸고 편법을 쓰다니 FIFA와 월드컵, 미국 모두에 참담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프랑스어권 중도정당 레장가제 소속 이방 브루그스트레트 유럽의회 의원은 "트럼프가 개입하자마자 퇴장이 갑자기 부당한 판정이 되다니 놀랍다. FIFA는 공정을 지켜야지 정치적 압력에 굴복하는 인상을 줘서는 안 된다"며 "경기장에서 보자. 데블스(벨기에 대표팀 별명)의 승리는 더욱 값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축구연맹(UEFA)도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FIFA를 비판했다. UEFA는 성명에서 "퇴장에 따르는 최소 1경기 자동 출전정지는 재량으로 선택할 수 없고 관할 기관의 결정도 필요하지 않다"며 "전례 없고 이해할 수 없고 정당화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맹비난했다.
또 "축구는 어디서나 같은 규칙으로 경기하기 때문에 신뢰받는 것"이라며 "규칙의 확실성이 그걸 지켜야 할 이들에 의해 더 이상 보장되지 않으면 경기의 온전함과 대회 신뢰가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벨기에왕립축구협회(RBFA)는 FIFA가 징계 유예 결정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의 제기 절차까지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협회는 이날 오후 "결정문 사본과 절차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고 협회의 입장을 전했다"며 "FIFA는 이 서신을 항소로 간주하고 심리 담당자가 지정됐으며 항소 절차를 마무리할 시간이 몇 시간뿐이라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항소를 접수하려면 FIFA 규정에 따라 우선 이유가 명시된 결정문이 전달돼야 한다"며 "단지 설명을 요구했을 뿐인데도 FIFA가 알아서 항소 절차를 만들어내고 곧바로 부적법 결정이 내려지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FIFA가 이밖에는 아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번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윤리의 기본 원칙과 공정한 경쟁, 축구 전체의 이익을 위해 몇 시간, 며칠, 몇 달이고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월드컵 무대에서 지금까지 레드카드가 189장 나왔지만 출전정지 처분을 피한 경우는 이번이 두 번째다. 1962년 칠레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브라질 가린샤가 퇴장당했으나 결승전에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다만 당시에는 자동 출전정지 제도가 없어 징계가 번복된 사례는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FIFA는 위원 18명으로 구성된 징계위원회가 독립적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표결로 징계를 유예했는지는 공개하지 않고 관련 보고서도 내놓지 않았다.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내정된 위르겐 클롭은 "진짜 트럼프와 인판티노가 서로 합의해 결정했다면 미친 짓"이라며 "축구를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은 축구와 관련된 어떤 일에도 관여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판티노와 원한 관계인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은 엑스(X·옛 트위터)에 "레드카드는 정치적 통화로 취소되는 게 아니다"라며 "FIFA여, 어디로 가는가(Quo Vadis, FIFA)"라고 적었다.
소셜미디어에는 FIFA의 이번 결정을 조롱하는 각종 밈이 돌고 있다. 이 가운데는 발로건이 레드카드를 주는 심판을 향해 트럼프의 얼굴이 그려진 카드를 내미는 인공지능(AI) 합성 영상이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축구와 무관한 트럼프의 정치행사에 얼굴을 비치는가 하면 지난해 느닷없이 FIFA평화상을 만들어 트럼프에게 주는 등 FIFA를 이용해 정치를 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영국 비영리단체 페어스퀘어는 FIFA평화상 제정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조사해달라며 지난해 12월 FIFA 윤리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유럽의회 의원 50명은 최근 FIFA에 서한을 보내 이 조사를 빨리 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파장은 유럽을 관통해 미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이었다가 트럼프 대통령과 척을 진 애덤 킨징어 전 의원은 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에 "FIFA조차 트럼프 집안의 부패에 연루돼 있다"면서 "미국이 우승한다면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이제 그 기록에는 늘 꼬리표가 붙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대표팀이 앞으로의 경기에서 실력으로 승리를 거머쥐더라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대중의 의구심을 씻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미 스포츠채널 ESPN의 축구 전문기자 마크 오그던은 "FIFA가 발로건을 봐주는 것으로 누구도 이득을 보지 못한다. 미국 축구대표팀마저 그렇다"며 탄식했다.
오그던은 "만약 미국이 6일 벨기에를 이긴다면 세계 축구계는 이를 힘겹게 얻어낸 전술적 승리로 보지 않을 것"이라며 "대신 주최국이 배후에서 부패한 정치적 술책으로 규칙을 변경했다는 인식으로 꼬리표를 영원히 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정치평론가 사이러스 얀선은 "미국 대표팀에 '루즈-루즈(lose-lose)'의 상황"이라며 "벨기에를 꺾더라도 대통령의 부정행위가 필요했다는 이유로 승리가 퇴색할 것이고 벨기에에 진다면 대통령이 부정행위를 해도 이기지 못한 게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FIFA가 결정을 번복하도록 강제할 권한이 없어야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중 증명했듯이 법 위에 있고 미국은 견제와 균형이 없는 나라"라고 쓴소리했다.
미 평론가 브라이언 크래슨스타인도 "이제 미국이 월드컵 우승을 해도 의구심이 제기될 것"이라며 "트럼프에 감사드린다"고 비꼬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지하려 하는 출생시민권으로 발로건이 미국 시민이 돼 미국 국가대표가 됐다는 점을 꼬집는 반응도 나왔다.
프리랜서 기자 줄리아 이오페는 "본인이 없애려고 한 출생시민권으로 미국 대표팀 일원이 된 발로건이 없이는 이길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FIFA에 전화를 했다니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
발로건은 2001년 뉴욕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얻었다. 영국 국적 부모가 뉴욕에 휴가를 왔다가 발로건을 낳은 것이다.
미 보수매체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과 통화하면서 발로건에 대한 처분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이 발로건에 대한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외부 변호인단을 구성했다고 전했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가운데 미국과 벨기에의 16강전은 한국 시간 7일 오전 9시에 시작된다. 발로건의 출전과 움직임 하나하나에 큰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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