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코트 4면에서 선수들이 몸을 풀며 천황배-황후배 파이널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도쿄(일본), 홍성욱 기자] |
아침 일찍 출발하는 도쿄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4시부터 서둘렀습니다. 지난 목요일이었습니다.
부랴부랴 도쿄에 도착해 우동 한그릇을 비우고 도쿄체육관에 도착하니 마룻바닥 위에 구획을 나눠 마련한 코트 4면이 반깁니다.
오후 2시가 되자 천황배-황후배 파이널 1주차 경기가 막을 올립니다. 연쇄적으로 울리는 심판 4명의 휘슬이 체육관에 메아리칩니다.
8팀이 동시에 경기를 치르는 진풍경 또한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울긋불긋한 유니폼들이 공의 궤적을 따라 흩날리듯 움직이니 마치 꽃밭에 와 있는 기분입니다.
이 대회에는 SV리그와 V리그는 물론이고, 대학과 고교 팀, 여기에 클럽팀까지 나서 자웅을 겨룹니다. 그야말로 ‘배구대축전’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득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몹시 부러웠습니다. 기본기를 갖춘 선수들이 투혼까지 불사르니 눈이 호강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코트를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선수 가족들과 응원단이 집결하면서 수용인원 1만석을 자랑하는 체육관은 까맣게 변해갔습니다.
이 대회는 일본 내 배구 축제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관심 속에 진행됩니다. 전세계 주요 에이전트들이 집결하는 이유 또한 분명합니다. 이탈리아, 튀르키예, 폴란드, 프랑스, 미국, 중국 등 수십 나라 에이전트가 몰려들었습니다.
코트를 둘러싼 플로어에서는 배구의 국제회의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이는 일본이라는 큰 시장을 공략함과 동시에 일본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유럽에 보내는 물밑 협상이 진행됨을 말해줍니다. 우리나에선 보기 어려운 광경입니다.
현재 일본 SV리그는 여자부 14팀, 남자부 10팀이 있습니다. 2부 격인 V리그는 여자부 12팀, 남자부 18팀입니다. 이 무대에서 뛰는 외국인선수와 아시아쿼터선수만 100여명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에서 뛰는 외국인선수 42명(아시아쿼터 포함)과는 규모도 다르거니와 연봉 수준과 실력 등급 또한 현격한 차이를 보입니다.
대회의 위상 또한 상당합니다. 아시아 최고리그인 일본 SV리그는 리그 챔피언을 최우선시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천황배-황후배 우승팀을 꼽습니다. 전통과 권위의 대회이고, 각급 학교와 프로팀들이 모두 나선 대회이기에 우승 타이틀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상금도 많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은 상대를 얕보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고교 팀과 만나는 V리그 팀도 외국인선수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며 상대를 존중합니다. 일본 취재진의 관심도 고교 팀의 돌풍에 집중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정규시즌을 거쳐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한 팀만 스포트라이트를 받습니다. KOVO컵대회가 지방을 순회하면서 열리지만 프로 팀들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KOVO컵은 포맷이 자주 변하고 있어 정체성 또한 모호합니다. 국내 선수 위주의 대회였다가 외국인선수가 참가해 정규시즌 모의고사 형태의 대회로 변하기도 했고, 해외 초청팀이 등장하기도 하더니 지금은 어떤 방향성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상한 대회로 평가절하되고 있습니다. 특히 상무의 경우, 초청 대상이었다가 제외되는 등 찬밥 신세입니다.
프로팀들도 KOVO컵에서 우승하면 좋지만 못해도 그만이라 여깁니다. 베스트 전력으로 나서기는 어렵기에 포커스를 시즌에 맞춥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팀이 ‘차라리 잘됐다’라며 올라가는 경우도 여러 차례 목격했습니다.
이런 의미없는 대회를 굳이 이어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참에 최고 권위의 대회를 만들어 프로와 실업, 대학과 고교 팀에 클럽 팀까지 모두 나서는 배구대축제를 만들면 어떨까 싶습니다. 시기는 프로 비시즌 때 지역별 예선을 치르고, 결선 토너먼트는 정규시즌 2라운드나 3라운드를 마친 시점에서 펼치면 이상적일 것입니다.
이런 형식의 대회 포맷을 떠올리다 옛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강산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지만 배구가 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장충체육관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특히 대통령배 대회가 열릴 때는 권위가 느껴졌습니다.
다시 대통령배를 부활시키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립니다. 대회 방식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예를 든다면 프로 7개 구단은 24강전 직행 기회를 부여하고, 나머지 17자리는 실업, 대학, 고교, 클럽 팀까지 예선을 치르거나 종별선수권 우승 및 준우승 팀 등이 올라갈 수 있게 하면 될 것이라 판단합니다.
제천산업고와 대한항공이 대통령배 토너먼트에서 만난다면 흥미진진할 것 같습니다. 한양대학교가 삼성화재와 혈투를 펼친다면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울까요. 선명여고와 흥국생명의 대결도 기대됩니다. 수원시청과 한국도로공사가 만난다면 놓칠 수 없는 대결이 될 것입니다.
대통령배가 부활한다면 명실공히 우리나라 최고의 배구대회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팬들이 몰려들 것입니다. 미디어의 관심 또한 집중될 것입니다. 이는 우리 배구가 내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권장됩니다.
약팀은 강팀과 연쇄적으로 만나면서 강해집니다. 아마추어 팀들이 권위있는 대회에서 프로 팀들을 상대한다면 코트에 서는 그 자체로도 성장할 것입니다.
한국은 여자배구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냈고, 1978년에는 이탈리아에서 펼쳐진 세계선수권에서 남자배구가 4강에 오르며 주목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FIVB(국제배구연맹)가 주관하는 VNL에서도 남자부와 여자부 모두 퇴출됐고, 세계선수권 출전 또한 쉽지 않습니다. 올림픽 출전은 큰 꿈이 됐습니다. 2021년에 여자배구가 도쿄올림픽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 불과 4년전인데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 배구가 부활해야 합니다. 배구는 아직 겨울스포츠 최고 종목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꿈틀대며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의 미래들은 국제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대통령배의 부활은 절실해 보입니다. 저 혼자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라 확신합니다.
대통령배가 부활한다면 예선이 펼쳐지는 어느 지역이라도 달려가서 취재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습니다.
대한배구협회(회장 오한남)와 한국배구연맹(총재 조원태)이 손을 맞잡는다면 분명 다시 대통령배를 부활시킬 수 있을 겁니다.
천황배-황후배는 14일 파이널 1주차를 마무리하고 4강이 각각 가려졌습니다. 모두 SV리그 팀들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펼쳐집니다. 일본 공중파로 중계됩니다.
이 대회 예선에 지역별로 참여한 수많은 팀들은 탈락의 아픔보다 참여의 기쁨과 영광을 추억으로 간직하며 오늘도 정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회를 그냥 지나치듯 바라봐선 안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 배구의 미래를 위한 터전 마련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선수들의 실력을 단 시간에 키울 수는 없겠지만 동기를 부여하며 성장을 유도하는 이런 대회를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더 시급하게 느껴집니다.
대통령배 배구대회의 부활 소식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 |
| 청황배-황후배 파이널 1주차 경기가 끝난 코트 뒤에서 인터뷰가 이뤄지고 있다. [도쿄(일본), 홍성욱 기자] |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