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종합격투기 첫 승을 신고한 정상진 (C)스포츠타임스 고준일 기자 |
[스포츠타임스=고준일 기자] 종합격투기의 3대 요소는 킥복싱과 주짓수 그리고 레슬링이다. 타격계와 그래플링계 운동을 충분히 섭렵해야만 경쟁력이 생기는 종목이 종합격투기다. 복싱이나 킥복싱의 챔피언, 올림픽 레슬러, 올림픽 유도가들이 종합격투기에서 성공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도 종합격투가로서 고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도전했기 때문이다. 타격이 강한 선수들은 그래플링이 부족하고, 그래플링이 강한 선수들은 반대로 타격에 약점을 드러내곤 했다.
그렇다면 타격계 운동인 복싱과 킥복싱, 그래플링계 운동인 유도에서 고루 두각을 나타낸 경우라면 어떨까. 물론 각 무술을 종합격투기라는 하나의 격투종목으로 만드는 과정은 필요하겠지만, 보통의 선수들이나 한 가지 운동을 배웠던 선수들보단 빠르게 적응할 수 있으며, 탄탄한 기본기로 인해 경쟁력에 있어서도 유리할 것이 분명하다.
여러 격투스포츠를 고루 경험한 선수가 종합격투기 전장에 뛰어들어 눈길을 끈다. 주인공은 정상진(팀타이혼). 지난 6월 30일 일본에서 열린 '워독 케이지 파이트 10'에서 상대인 타카시를 1라운드 4분 38초 만에 서브미션으로 제압하며 종합격투기에서의 성공적인 첫 출발을 알렸다.
정상진은 도전하는 종목마다 정상에 오른 만능 격투가다. 유도가로서 2000년대 초반 경기도민체전을 두 차례 제패한 뒤 입식격투기에 도전, 2008년 세계무에타이연맹 라이트급 챔피언에 등극했고 2009년엔 대한무에타이협회 국가대표에 선발된 경험이 있다. 입식격투기 총 전적은 27승 4패다. 또 2008년과 2010년엔 경기도민체전 복싱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5대 독자의 숨겨진 재능
처음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늦둥이로 태어난 정상진은 집안의 5대 독자였는데, 어렸을 때 몸이 약하고 체격이 왜소해 늘 맞고 다녔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부모가 반 강제적으로 시킨 것이 유도였다. 부모의 의도에 떠밀려 시작한 유도였지만, 생각보다 재밌고 작은 대회에서 입상을 하자 선수를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렇게 시작해 고2 때와 스무 살 시절 경기도민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입식격투기는 2000년대 중반 군에서 전역한 뒤 친구의 추천으로 수원투혼체육관(현 타이혼짐)에 발을 들이면서 접하게 됐다. "운동이 좋아 계속 하고 싶은데 유도 선수로선 더 이상 어려웠고, K-1에 관심이 있던 차 친구가 다니는 무에타이 체육관을 갔다가 바로 매료됐다. 하루 5시간을 체육관에서 살 정도로 좋았다. 선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유도와는 성질이 전혀 다른 운동이라 적응이 쉽지 않았다. 수년간 도복을 입은 상태에서 메치고 넘어트리는 운동만 한 탓에 그 움직임이 몸에 배었기 때문이다. 펀치와 킥, 니킥, 빰클린치, 스텝 등 끝없이 연습하는 것만이 정답이었다. 그러나 운동을 배우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영화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생긴 타격에 대한 동경, 그것을 직접 경험했을 때의 만족감은 꽤 컸다.
그러다가 종합격투기에 관심이 생겼다. 이것을 두고 그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고 말한다. 입식격투기가 침체되고 종합격투기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종합격투기를 향하게 된 것이다.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나에게 맞는 운동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왔다. 건방진 말일 수 있으나, 입식격투기에선 제법 했으니 종합격투기에서도 세계 대회에 나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또 종합격투기 지도자가 되고 싶은 계획 때문이라도 선수로서의 경기 경험이 필요했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 출발이 좋다
종합격투기를 수련한 지는 3년 정도 됐다. 처음엔 팀타이혼 선수들과 함께 양해준 코치에게 배우다가 약 1년 전부터 팀포마의 윤철 감독에게 가르침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종합격투기에 대한 이해도 높아졌다. 또 발보사 블랙벨트인 석상준 코치로부터 주짓수를 배우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주짓수 대회에 출전해 우승도 했다.
과거 자신이 생각하던 종합격투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옛날엔 서서 싸우다가 메치면 주짓수를 하는 게 종합격투기인지 알았다. 하지만 나 같은 타격가가 타격을 잘 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탄탄한 그래플링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보다 사이즈가 큰 운동이다. 더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는 것이 정상진의 말이다.
또 "유도를 한 것이 종합격투기에 도움이 됐다. 주짓수 등의 그래플링에 대한 이해가 다른 킥복서들보다 빨랐다. 같이 입식타격을 하던 동료들도 그렇고 권민석 선수도 적응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하는데, 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다. 아직 배워야 할 부분이 많지만 어렵다기보단 재밌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트레이너인 윤철 감독은 정상진에 대해 "흔히 말하는 센스가 좋은 선수다. 기술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경기를 잘 풀어가는 능력이 있다. 또 왼손잡이에다가 타격까지 정교하고 그래플링 방어가 좋아 넘어트리기도 어렵다. 운동 기간에 비하면 그라운드도 뛰어나다. 종합격투기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시작은 늦었지만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있었던 데뷔전. 종합격투기 첫 경기였음에도 정상진은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종합격투기 수준이 높은 것을 알고 있고, 자신이 배우고 운동한 것에 대한 믿음 역시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긴장하기보단 즐거웠고 경기에 대한 어색함도 없었다. 결과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그라운드에서 상대를 괴롭히다가 결국 암바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내 타격을 종합격투기에서 증명하려면 그래플링을 죽도록 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라운드를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러 그라운드로 상대를 끌고 갔다. 부딪치고 싶었다. 이제 한 걸음 뗀 기분이다"고 경기를 떠올렸다.
정상진은 입식격투가 시절 운영이 뛰어난 파이터였다. 그를 지도한 타이혼짐 김도영 관장은 "스타일이 공격적이진 않다. 하드펀처도 아니다. 그러나 잘 맞지 않고 잘 때리는 등 기술이 간결하고 영리한 운영에 재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종합격투기에선 지금까지와 다른 스타일로 싸운다는 생각이 앞선다. "입식격투기에선 정교하게 계산적으로 싸우는 경우가 많았는데, 종합격투기에선 본능으로 임하고 싶다. 물론 그게 승률에 비례하지 않는 것도 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싸우고 싶다. 내 롤 모델은 UFC 라이트급의 도널드 세로니다"면서 거칠고 뜨거운 승부를 예고했다.
MMA에 올인, 꿈 쫓는 35세 열혈 청년
나이가 걸린다. 정상진은 1982년 생으로 한국나이로 35세다. 신인 아닌 신인으로, 남들은 은퇴를 준비하는 시기에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셈이다. 그러나 본인은 경쟁력이 오히려 20대 때를 앞선다고 강조한다. 최근 경기를 치를 때를 고려하면, 감량이 수월했고 체력도 20대 시절 이상이었다는 것. 게다가 경기에서의 여유도 생겼다. 적지 않은 나이는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의 도전에 남들은 고개를 갸우뚱 한다. 도전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운영하는 체육관이 있고 나이가 적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다. 얼마든지 안정된 생활이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할 시기인 만큼 그의 도전은 대단하기보다 의아하게 다가온다.
정상진은 현실보단 꿈을 쫓아가기로 했다. "2년 가까이 쳇바퀴 굴러가듯 체육관 운영만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은 운동에 집중하느라 돈은 이전만큼 못 벌지만 너무 행복하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해외로 종합격투기 유학을 가고 싶은 생각도 있다. 선수도 선수지만 종합격투기를 제대로 보급할 정도로 실력을 갖추고 싶다. 돈은 그때 가서 벌어도 된다. 40세까진 열심히 뛰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꿈은 세계적인 대회를 밟아보는 것. 모든 선수들의 목표이기도 한 UFC 진출이다. 2년 뒤인 37세에는 UFC 플라이급에 발을 들인다는 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바쁘게 뛸 각오도 돼있다. 그리고 40세까지 미친 듯 싸우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정상진은 "날 키워주신 스승님들에게 감사드린다. 선수는 스승 없이 성공할 수 없다"며 "종합격투기를 하고 있지만 내 고향은 입식타격이다. 뛰어난 입식타격가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래플링에 더 매진할 것이다. 자신 있고 멋진 타격을 구사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준일 기자 mma93@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