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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배구 산책] 한국 여자배구 VNL 1승의 의미
홍성욱 기자 | 2024.05.21 04:06
승리 후 기념 촬영을 하는 한국 선수단. (C)FIVB

한국 여자배구가 모처럼 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승전보를 전해왔습니다.

페르난도 모랄레스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하루 전인 20일(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24 FIVB(국제배구연맹)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 첫 주차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에 세트스코어 3-1로 승리했습니다.

이 승리는 상당한 의미를 지녔습니다. 단순한 1승이 아닙니다.

우선 기록적인 부분부터 살펴보면 세계랭킹이 43위에서 37위로 여섯 계단 올라섰습니다. 대회 전 40위에서 출발했다가 초반 3패로 43위가 됐지만 지금은 수직상승했습니다. 

또한 길고 긴 VNL 30연패를 끊어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다가옵니다. 한국의 직전 VNL 승리는 2021년 6월 15일 이탈리아 리미니에서 펼쳐진 캐나다전이었습니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그 해 VNL 3승째를 거뒀습니다. 캐나다전 승리 당시 한국은 아포짓스파이커 정지윤(15점), 아웃사이드히터 김연경(23점)과 박정아(24점), 미들블로커 양효진(12점)과 박은진(8점), 세터 염혜선, 리베로 오지영이 선발로 출전했습니다. 전원 도쿄올림픽 4강 멤버들입니다.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이끈 당시 대표팀은 이 경기 승리 후 브라질, 튀르키예, 네덜란드에 차례로 패했고, 이후 올림픽 체제로 전환해 큰 성과를 냈습니다.

한국은 도쿄올림픽 이후 김연경과 양효진이 굳건하게 지켜왔던 대표팀 주전 자리를 후배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감독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2022 VNL과 2023 VNL에서는 1승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세대교체 과정에서 신장의 열세, 스피드의 열세, 기본기의 열세가 겹쳤기 때문에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았습니다.

모랄레스 감독 체제로 나선 2024 VNL도 초반 3경기는 모두 셧아웃 패배였습니다. 전개 또한 일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태국전은 달랐습니다. 선수들은 이미 브라질로 출발하기 전부터 태국전 승리를 정조준하고 있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이유였습니다. 2022 VNL과 2023 VNL 태국전은 0-3 완패였고, 20점을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2022 셰계선수권 예선, 2023 아시아선수권, 2023 올림픽예선에서도 세트를 따내지 못하고 완패했습니다. 태국전 5경기 맞대결 결과는 5연패와 세트 스코어 0-15였습니다. 처참한 수준이었습니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를 갈고 준비했습니다. 이미 태국 대표팀 주죽 멤버들의 플레이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지난 시즌 아시아쿼터 도입에 따라 폰푼(IBK기업은행), 위파위(현대건설), 타나차(한국도로공사)와 함께 시즌을 보낸 것도 맞대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운도 따랐습니다. 전날 경기에서 태국은 폰푼 세터가 결장했고, 주전 아웃사이드히터 앗차라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승리의 의미는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경기 시작부터 가져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최정예 멤버와 붙어 설욕하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또 하나 모랄레스 감독의 ‘낮고 빠르게’ 전략이 이날 경기 만큼은 확실하게 통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 대표팀을 이끈 외국인감독이 추구하는 토대에는 기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단, 대표팀 선수 구성에 따라 풀어내는 방향성은 차이를 보였습니다.

라바리니 감독은 김연경의 아이솔레이션을 축으로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중시했습니다. 그 속에서 조직적인 플레이를 구축했습니다. 이 전략은 도쿄올림픽 4강으로 귀결됐습니다.

하지만 세자르 감독은 이 전략을 쓸 수 없었습니다. 분석에 장점이 있는 그는 철저하게 강서브를 구사하고, 리시브가 됐을 때는 속공 혹은 이동 속공을 통해 집요하게 득점을 노렸습니다.

최근 지휘봉을 든 모랄레스 감독은 낮고 빠른 공격을 통해 윙스파이커 삼각편대 가동을 중시했습니다. 이 전략은 이번 대회 경기 중 태국전과 일본전에서 가장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태국전 승리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한국은 아포짓스파이커 박정아(16점), 아웃사이드히터 강소휘(22점)와 정지윤(16점), 미들블로커 이주아(11점)와 이다현(8점), 세터 김다인, 리베로 한다혜가 선발로 나섰습니다. 도쿄올림픽 멤버는 박정아와 정지윤 뿐입니다.

이들 멤버로 승리를 거둔 부분은 자신감과 직결됩니다. 패배의식에 눌려있던 상처를 조금이나마 치유할 수 있었고, 승리의 맛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차례 해외 취재를 가서 경기 후 믹스트존에 서있으면 눈물을 흘리며 체육관을 나서는 힘없는 선수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봐야 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울먹이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기쁨의 순간도 있었습니다. 2022 세계선수권 마지막 경기였던 크로아티아전에서 승리한 이후 믹스트존에서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선수들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날 리우데자네이루에서도 선수들은 자신감을 회복했고, 성취감도 느꼈습니다.

이는 남은 경기를 풀어가는데 큰 힘이 될겁니다. 높고 강한 상대를 연이어 만나겠지만 우리의 플레이를 자신감있게 펼친다면 이전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겁니다.

한국여자배구는 아직 터널 속에 있습니다. 하지만 긴 연패를 끊어낸 건 신호탄입니다. 이런 신호들이 모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눈부신 미래를 만날 수 있을겁니다.

지속적으로 강한 상대를 만나다보면 우리도 조금씩 강해집니다. 승부의 세계는 이기다 지고, 지다 이기는 법입니다.

1승의 교훈 속에 대표팀은 아르헨티나로 이동해 훈련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미국 알링턴에서 2주차 경기를 이어갈 것입니다. 더 멋진 경기를 펼쳐주길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아울러 다시 한 번 태국전 승리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기뻐하는 한국 선수들. (C)FIVB
미소짓는 강소휘. (C)FIVB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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