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배구 V리그
[일문일답] ‘8년 지휘봉 내려놓은’ 박미희 감독 “배구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홍성욱 기자 | 2022.03.28 01:52
박미희 감독. (C)KOVO

박미희 감독이 흥국생명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8시즌 동안 꼭 쥐고 있던 ‘감독’이라는 직책 속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는 선수생활 때처럼 감독직을 수행하면서도 스스로에게 매우 엄격했다. 그래서 조금 흐트러질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지만 이전 기조를 유지하려 한다. 박미희의 일생은 늘 이랬고, 앞으로도 이럴 것 같다. 춘분이 지났지만 완연한 봄기운 대신 슬쩍 쌀쌀한 기운이 느껴지던 날 오후 박미희 감독을 만나 못다한 얘기들을 긴 시간 나눴다. 그는 잠깐 쉬지만 배구장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했다.

# 2014년에 흥국생명 감독으로 부임했으니 8시즌을 치렀다. 그 이전과 지금, 가장 변한 점은 무엇이었나.

“(잠시 생각하더니)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나 역시 시행착오를 겪었다. 첫 시즌도 그랬고, 이번 시즌도 생각하지 못한 일들과 마주했다. 그래도 숱한 어려움들을 최선을 다하며 헤쳐 나왔다는 생각은 한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때에 따라 그리고 상황에 따라 무얼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 시즌마다 사연이 있다. 단지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가장 기억나는 세 시즌과 이유를 듣고 싶다.

“우선 첫 시즌이 기억난다.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처음이었다. 주변의 많은 시선이 두려울 때도 있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새로운 길을 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내 안에서 느낄 수 있던 시기였다. 두 번째는 정규리그 우승을 했던 2016-2017시즌이다. 같이 시작했던 선수들과 노력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통합우승을 했던 2018-2019시즌이 떠오른다. 어려움을 겪은 이후 팀을 다시 구성했다(통합우승을 말하면서 미소를 보였다).”

# 8년을 되돌아보면 감독 박미희는 어떤 성향의 감독이었나.

“성향은 다른 사람들이 평가해야 객관적일 것 같다. 내 생각에 나는 너무 고지식하고, 내 자신에게 엄격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끄럼 없는 사람이고 싶었다.”

# 우승도 경험했고, 최하위도 경험했다. 기억 속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8시즌 동안 언제나 목표는 하나였다. 하나에 집중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통합우승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순간은 너무 짧았다. 더 소중한 것은 남들이 알아주는 걸 떠나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생각으로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았는가였다. 꼭 좋은 기록이 아닐지라도 그 안에서 경험했던 모든 일들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 됐다.”

# 때로는 격한 항의도 있었다. 의도적인 행동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감독은 모든 순간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감독 입장에서 똑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되고 경기흐름에 큰 영향을 준다고 판단해 나온 행동이었다.”

# 작전시간 도중 ‘짜증내지 마’라는 발언 이후 드라마같은 역전승을 거뒀다. 작전시간에 어떤 부분을 중요시했나.

“경기는 현재가 아니라 항상 미래다.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은 우리 문제일 뿐이다. 다른 이유를 찾기보다 우선 선수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생각을 전달하려 했다. 그 짧은 시간에 냉정함을 찾을 수 있도록 간결한 단어가 필요했다. 다행히 선수들이 변화에 적응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찾았던 것 같다.”

# 선수 평가에 대해 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속마음은 조금 다를 것 같다.

“(끄덕이며)맞다. 가끔은 칭찬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절제하려 노력한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에게 더욱 인색한 편이다. 사실 칭찬받을 정도로 좋은 경기를 했을 때는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달달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그래서 선수 미팅 때마다 듣기 좋은 말을 경계하고, 듣기 싫은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 이번 시즌은 신인급 선수를 키우는 시즌이었다. 특별히 힘이 들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 시즌에 한 포지션 선수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 시즌은 여러 포지션에서 이런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 부분에서 힘이 든 건 사실이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성과도 동반됐다.”

# 미도파 코치였던 김형실 감독, 88올림픽 남자 주장 김호철 감독과 대결을 펼친 점은 보는 입장에서도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당사자 입장에선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김형실 감독님은 고등학교 때 만났다. 미도파팀에서는 오랜 시간 같은 목표로 땀을 흘렸다. 김호철 감독님은 태능선수촌 시절 존경하던 선배님이었다. 88올림픽이 떠오른다. 두 감독님과 현장에서 만나면서 선수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 여러 외국인선수를 겪었다. 기억에 남은 선수가 있다면 누구인가.

“톰시아가 기억난다. 뛰어난 득점력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할 때는 책임감으로 해내는 선수였다. 선수들과의 관계나 생활적인 면에서도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선수로 기억에 남아있다.”

#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지내게 됐다. 조금 생소할 것 같다. 생활에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하다.

“이전까지는 집에 오면 떠날 시간을 먼저 계산했다. 그리고 집안일을 빠르게 했다. 지금은 며칠 안됐지만 느긋해졌다. 아침에 세수를 안하는 날도 있다(웃음). 8년이 길었다고 느끼는 건 가족 모두가 엄마와 아내를 찾지 않고 집안일(식사, 빨래, 청소)을 각자 알아서 잘 해낸다. 아마도 좌충우돌하면서 엄마와 아내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한 것 같다. 이것도 훈련효과인 듯 하다.”

# 승패의 갈림길에서 8년을 살았다. 그 긴장의 끈을 살짝 놓는 기분은 어떠한가.

“시즌이 끝나는 3월 말이면 항상 이런 상황을 받아드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냈다. 임기 만료까지 책임감있게 잘 끝낼 수 있어 다행이고, 행복하다.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셨다. 집에 커다란 꽃바구니도 도착했다.”

# 조금은 재충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간 배구에 기여했고, 배구와 함께 생활해 왔다. 배구로부터 받은 것도 많았다. 앞으로 진로가 궁금하다.

“당장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몸과 마음을 돌보려 한다. 지금 현장을 떠났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할 준비를 할 것이다. 배구장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사랑받은 만큼, 작은 일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 많은 팬들의 성원이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믿고 지지해주신 저의 찐 팬들, 지인들,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맡겨주신 흥국생명 구단에 감사드린다.”

PS.

박미희 감독이 가족 품에 안긴 날. 집 벽면을 가득채운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사진도 보여줬다. 팬이 보낸 꽃바구니도 놓여있었다. 그는 승부의 세계 속에서도 외롭지 않았고, 가족과 주변의 응원 속에 지내왔다.

인터뷰 도중 그간 함께 지내온 선수들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이번 기사에는 넣지 않기로 했다.

박미희 감독은 함께 해온 선수 그리고 가족 같은 스태프와 사무국 직원들을 언급하면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정이 많이 든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수많은 감독 가운데 박 감독은 내적으로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눈물도 많은 사람이었다. 박미희 감독을 다음 시즌 컵대회가 열리는 순천 현장에서 만나길 기대한다.

2018-2019 통합 우승 직후 선수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는 박미희 감독. (C)KOVO
박미희 감독이 통합우승 이후 톰시아와 포옹하고 있다. (C)KOVO
한태올스타전에서 한국을 이끈 박미희 감독이 꽃다발을 받고 미소를 보이고 있다. (C)KOVO
박미희 감독이 팬들과 인사하며 입장하고 있다. (C)KOVO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성욱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존
PREV NEXT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