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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욱의 배구 산책] 흥국생명이 가야할 길
홍성욱 기자 | 2021.06.28 11:31

비시즌입니다. 프로배구 남녀 14개 구단이 휴가 이후 훈련에 나서며 컵대회와 시즌 준비에 한창입니다. 대부분 선수단 계약도 마무리 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독 한 구단만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입니다.

이 팀의 위기는 지난 시즌 3라운드 시작과 함께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변곡점을 만난 건 2월 10일이었습니다.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소속 선수인 이재영과 이다영의 과거 학교 폭력에 대한 폭로글이 올라왔습니다.

이 글로 인해 사회적 파장은 상당했고, 숨어있던 피해자들의 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재영과 이다영을 시작으로 다른 구단 선수들은 물론, 타종목과 연예계까지 상황이 번졌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들불 같았습니다.

급기야 흥국생명 구단은 설 연휴가 지난 15일 ‘학폭 물의, 이재영 이다영 선수 무기한 출전 정지 결정’이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지난 10일 구단 소속 이재영, 이다영 선수가 중학교 선수 시절 학교 폭력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였습니다. 피해자분들께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피해 사실을 밝혀주셨습니다. 피해자분들께서 겪었을 그간의 상처와 고통을 전적으로 이해하며 공감합니다.

구단은 이번 일로 배구를 사랑하시는 모든 분들께 실망을 끼쳐 드려 죄송하고 깊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학교 폭력은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며,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습니다. 두 선수는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등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구단도 해당 선수들의 잘못한 행동으로 인해 고통 받은 피해자분들께 다시 한번  사과 말씀을 드립니다.

구단은 사안이 엄중한 만큼 해당 선수들에 대해 무기한 출전 정지를 결정하였습니다.

두 선수는 자숙 기간 중 뼈를 깎는 반성은 물론 피해자분들을 직접 만나 용서를 비는 등 피해자분들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될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해야 할 것입니다.

구단은 이번 일을 거울삼아 배구단 운영에서 비인권적 사례가 없는지 스스로를 살피고, 선수단 모두가 성숙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성장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이 보도자료가 배포된 이후 4개월 하고도 2주가 지났습니다. 그 사이 구단은 학교 폭력 가해자인 이재영과 이다영에게 어떤 징계를 이어왔는지 함구하고 있습니다. 연봉 지급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적반하장으로 두 선수는 소송으로 사실관계를 따지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나고 싶지 않아 피한다면 직접 찾아가지 않더라도 다른 경로를 통해 진심어린 사과를 전할 방법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성급하게 소송으로 사실관계를 따지려 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구단은 두 선수에게 과연 징계를 내리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이다영의 그리스 이적 추진 과정 또한 심층 취재 결과, 흥국생명 구단이 이다영 측과 함께 추진한 것임이 확인됐습니다.

국가대표까지 지낸 구단의 대표 선수가 해외에서 이적 발표가 버젓이 나오는데도 떳떳하게 발표 조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또한 흥국생명이 소속 선수의 이적을 추진했다는 건 징계를 풀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또한 흥국생명의 불찰입니다.

지난 22일 이사회에서 흥국생명 김여일 단장이 이재영과 이다영의 선수 등록에 대해 발언한 것 또한 이해되지 않습니다. 당시 기자는 이사회가 끝난 직후 여러 구단 단장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불쾌하다는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왜 학교 폭력 가해 선수의 등록에 대해 구단이 알아서 할 일인데 이사회를 통해 발언하며 마치 이해를 구한 것인 듯 하려 했는지 불편해 했습니다.

흥국생명이 두 선수에 대해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리고도 4개월 여 만에 선수 등록을 하려 한다는 건 분명한 판단 미스입니다. 이재영과 이다영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적어도 2021-2022시즌은 자숙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내게 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오히려 김여일 단장은 이사회에서 6월 30일에 두 선수 등록을 하지 않을 것이니 이에 대해 이해를 구한다는 발언을 했어야 했습니다. 현재 여자부 구단 가운데 학교 폭력 가해자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영입할 구단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아직 흥국생명은 소속 선수 4명의 계약이 이뤄지지 않았음이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나머지 선수들이 겪는 피해, 그 선수들의 마음도 구단은 돌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흥국생명은 남은 사흘 동안 고민해야 합니다. 과연 두 선수의 등록과 해외진출 추진이라는 절차가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인지를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김여일 단장은 지난 2월 15일 기자에게 “논란이 된 모든 부분이 완전하게 회복 돼야 두 선수가 돌아올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무기한이라는 의미는 이를 말한다. 1년이 될 수 있고, 2년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영원히 두 선수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전제는 모든 부분의 회복이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등록 마감 시한이 다가오면서 흥국생명 구단은 등록과 출전을 별개 문제라고 합니다. 적어도 다음 시즌 이내에 출전 정지 징계를 풀고, 선수를 코트에서 뛰게 할 생각이 있다는 얘기를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은 배구 팬들을 생각해야 할 시간입니다. 팬들은 이재영과 이다영의 등록에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흥국생명은 아직 상황을 재검토할 충분한 시간이 있습니다.

이다영의 해외 진출 또한 이다영 본인 혹은 흥국생명 구단이 분명하게 상황을 밝히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선수가 원했는지, 구단이 어떻게 도왔는지, 징계를 앞으로 유지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해야 합니다.

흥국생명이 가야할 길은 분명합니다. 많지는 않지만 아직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흥국생명이 어떤 길을 걸을지를 지켜볼 것입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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