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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웃음’ 김해란 “12월에 엄마 됩니다”...선수 복귀도 계획
홍성욱 기자 | 2020.06.02 11:07
환호하는 김해란. (C)KOVO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디그’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김해란이다. ‘미친 디그’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배구라는 언어 속에 고유명사 '김해란'을 각인시킨 그는 잠시 배구공을 내려놓고 태교에 열중하고 있다. 오랜시간 자녀계획을 하며 시기를 놓고 고심 했던 김해란은 그토록 원했던 아이를 가졌다. 오는 12월에는 결혼 7년 만에 새 식구를 맞는다. 태명 ‘금복이’는 지금 엄마 김해란의 뱃속에서 잘 자라고 있다. 아이를 품은 김해란의 표정은 코트에서와 달랐다. 미소는 가득하고, 표정은 행복했다. 

▲ 생명을 품었다. 꿈 같은 신기한 일상이 시작됐다. 먼저 축하를 전한다. 언제 임신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하다.

“감사드린다. 은퇴 기사가 4월 10일에 나갔다. 금요일이었다. 주말이 지나고 나서 임신테스트기에 조금 흐릿한 두 줄이 보였다. 바로 집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는데 임신이었다. 웃음이 계속 나왔다.”

▲ 엄마가 된다. 어떻게 실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냥 신기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기를 가진게 사실인지 마냥 신기하다. 아기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찾아와줬다(웃음). 여름까지는 쉬고 놀다 이후에 가질 계획이었는데 엄마가 근심하지 않게 바로 찾아와줬다.”

▲ 요즘 남편과 시댁, 그리고 친정에서 최고대접을 받을 것 같다.

“이전에도 정말 잘해주셨다. 하지만 요즘은 그야말로 ‘황제대접’을 받는 것 같다. 집에 있어도, 시댁에 가도, 친정에 가도 아무것도 하지말라는 말만 계속 듣는다. 임신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졸린다. 졸리면 자고, 끼니 때가 되면 잘 먹으려 한다. 좋은 생각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 태명이 ‘금복이’라고 들었다. 

“친정엄마께서 임신 소식을 들으시고 ‘순금보다 귀하다’고 하셨다. 그 때 ‘순금보다 귀한 복스러운 우리아기’를 줄여 ‘금복이’로 정했다.(웃음).”

▲ 출산 이후 계획이 가장 궁금하다.

“12월 중순이 금복이 출산 예정일이다. 조리원도 예약해 두었다. 출산 후에는 친정 엄마께서 동탄 집에 오셔서 육아를 도와주시기로 했다. 감사드린다. 아이가 태어나면 몸을 만들어 다시 코트에 서고 싶다.”

▲ 은퇴식은 먼훗날에나 열릴 것 같다.

“(크게 웃으며)사실 선수 복귀는 남편과 얼마전에 상의해 내린 결정이다. 남편도 코트 복귀를 응원해줬다. 1만 5천 디그 기록을 달성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움이 남았다. 지금은 출산 초기 위험 시기에서 서서히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다. 의사와 상의해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가벼운 운동을 시작했다. 다 계획이 있다.(웃음)”

▲ FA(프리에이전트) 미체결 신분이다. 6개 구단과 자유롭게 계약할 수 있다.

“(미소를 지으면서)그렇게 됐다. 다만 몸이 지난 시즌과 비슷한 정도로 올라왔을 때 복귀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몸에 대한 자신감은 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한다. 출산 후 몸을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계획은 선수 복귀를 원한다.”

▲ 리베로 포지션은 미세한 몸 상태가 중요하다.

“(끄덕이며)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마음은 가는데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가끔씩 느꼈다. 그럴 때마다 보강 운동을 하면서 내 자리를 지켜왔다.”

▲ 끊임 없는 노력이 오늘 김해란을 만들었다.

“보강, 또 보강운동을 하다보니 나만의 운동 루틴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만큼 운동을 하면서 나를 가다듬어 왔다. 그래야 내 플레이가 나온다.”

▲ 지금은 해소됐지만 라바리니 감독 부임 초기 상당히 힘들어했다.

“배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다. 운동을 하기 싫었다. ‘내가 이 나이에 배구 걱정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몸도 안되고 모든 게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보강 훈련을 하면서 나를 지켜왔는데 그걸 못하게 하니 몸 상태를 끌어올릴 수 없었다.”

▲ 박미희 감독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감독님께 처음으로 그렇게 긴 문자를 보낸 것 같다. 울면서 썼다. 답답하고 얘기할 곳이 없었다. 그 때 박미희 감독님께 많이 의지했다.”

▲ 박미희 감독이 김해란 은퇴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 기사를 봤다. 찡했다. 박 감독님은 강하면서도 정이 많으시고, 눈물도 많은 분이다. 마음이 전해졌다. 항상 감사드린다.”

▲ 라바리니 감독과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었나. 

“대회가 세 차례 있었다. 언제 대표팀을 나갈 것인지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 때 라바리니 감독님과 면담이 있었다. ‘몸이 안되니 대표팀에서 나가겠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님이 그 때 ‘중요할 때 해줄 선수라 믿고 있다’라고 했다. 이후 개인 훈련도 일부 허락했다. 태국에서 도쿄올림픽 티켓을 따냈을 때 정말 기뻤다.”

▲ 원래 김해란은 공격수였다. 실업 도로공사 입단도 레프트로 했다. 어떻게 리베로가 됐는지 궁금하다. 

“12살에 배구를 시작했다. 울산 연포초등학교 5학년 때다. 초등학교 때 대학생이던 김종민 감독님과 차상현 감독님이 학교에 오셔서 지도해 주신 기억이 난다. 아마 두 감독님도 기억하실 것이다. 그 때 나는 공격수였다. 하지만 고3 때 왼쪽 발목 골절 부상을 당했다. 그러면서 포지션이 바뀌었다.”

▲ 부상이 포지션을 바꾼 것인가. 

“내 배구인생을 돌이켜보면 큰 부상으로 나뉘는 것 같다. 도로공사 입단 후 발목 재수술을 받았다. 그 때를 계기로 전문 리베로가 됐다. 결과적으로는 잘됐다. 내가 국가대표까지 됐으니 말이다.(웃음)”

▲ 도로공사 시절 올스타전에 출전해 공격을 시도하다 무릎 부상을 당했다.

“그 때는 힘들었다. 하지만 터닝포인트가 됐다. 트레이드 되면서 독한 마음을 먹었다. 복귀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재활에 임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다. 결국 부상으로 리베로가 됐고, 부상으로 팀을 옮겼다. 지나고보니 두 차례 모두 좋은 결과로 마무리됐다.”

▲ 배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세 가지 장면을 꼽는다면.

“2012 런던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두 번째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세 번째는 이번 도쿄올림픽 티켓을 따낸 순간이다. 모두 대표팀과 관련이 있다. 한 장면을 더 꼽자면 흥국생명에서 우승했던 것도 떠오른다. 인생에서 첫 우승이었다. 그래도 대표팀 기억이 더 큰 것 같다.”

▲ 해외진출을 고민하기도 했다.

“서른 초반부터 해외 진출 고민을 했다. 유럽 팀이 대상이었다. 남편과 함께 가는 조건을 맞추는 것이 생각보다 힘들었다. 좀더 어린 시절이었다면 경험을 위해서라도 나갔을 것 같다.”

▲ 선수 복귀를 희망하지만 최종 종착점은 지도자가 될 것 같다.

“지도자 꿈은 이전부터 늘 있었다. 아직은 선수 생활에 미련이 있다. 선수 복귀가 우선이다. 정말 미련이 없을 때까지 해보고 이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 6개월 뒤에는 엄마가 된다. 금복이도 엄마와 아빠를 닮아 운동신경이 출중할 것 같다.

“이미 남편과 얘기를 많이 했다(웃음). 우리 둘은 금복이를 축구 아니면 배구 선수로 키우고 싶다. 남자라면 축구 혹은 배구 중 선택하게 할 생각이고, 여자라면 무조건 배구를 권하고 싶다. 금복이가 결정하겠지만 배구를 한다면 참 좋을 것 같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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