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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겨냥했던’ 박기원 감독 “마지막에 원팀이 된 것은 큰 의미”
홍성욱 기자 | 2020.04.02 08:50
박기원 감독. (C)KOVO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대한항공은 2019-2020시즌 23승 8패 승점 65점으로 2위를 기록했다. ‘코로나 19’ 확산에 따라 리그가 중단되면서 정조준했던 역전우승은 물거품이 됐다. 팀은 9연승을 내달리고 있었고, 자력우승 기회가 있었기에 아쉬움은 진하게 남았다. 박기원 감독은 차분하게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다. 꽃이 활짝 핀 봄날 백전노장이 털어놓은 배구 이야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 ‘코로나 19’로 인해 시즌이 중단됐다. 

“처음에는 아쉬웠다. 그러다 가만히 앉아서 5분 쯤 생각하니 우승보다 중요한 건 선수들과 팬들의 건강이었다. 프로 세계에 있다면 우승을 향해 뛰어가는 건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특별한 상황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 시즌 초반에 밀고 나가지 못한 부분이 결과적으로 아쉽게 됐다.

“준비가 덜된 상황에서 순천 코보컵 때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이후 어려움이 있었다. 팀이 어수선한 가운데 시즌을 출발했다. 부상 선수도 나오고, 선수들이 대표팀에 다녀왔다. 그래도 기량 있는 선수들이기에 마지막에는 뭉쳐서 원팀이 됐다. 끝까지 경기를 하지 못했지만 좋은 페이스를 만들어 놓은 상태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 유일하게 모든 팀을 상대로 상대전적 우위를 가져갔다. 

“지금 시즌을 결산하면서 코치들과 주도면밀하게 체크를 하고 있다. 상대 전적 우위를 보였어도 KB손해보험에 2패를 한 것은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 리듬으로 코트에서 밀고 나갈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상대 수준에 맞춰 경기를 준비하고 코트에 나섰다. 다음 시즌에는 이런 부분이 없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지난 트라이아웃에서 비예나를 선택한 것을 두고 모험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주변에선 모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지 코칭스태프 미팅에서 비예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키가 크지 않다는 건 관념이 아닌가. 나와 코치들의 의견은 쉽게 모아졌다. 우리 선수들의 기량에 비예나가 조화를 이룰 것이라 생각했다. 덧붙인다면 가스파리니가 마지막 시즌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토론토에 가기 전부터 건강하고 탄탄한 선수를 뽑기로 기준을 잡았었다. 그 기준에도 비예나가 ‘딱’이었다.”

박기원 감독이 비예나에 작전 설명을 하고 있다. (C)KOVO

▲ 유광우의 영입이 대성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그렇다. 시즌 전 플랜에서 유광우는 없었다. 헌데 전격적으로 영입이 결정됐다. 구단이 빠르게 움직였다. 항상 고맙다. 결국은 광우 영입이 신의 한 수가 됐다. 광우가 오고 몸 상태를 체크했다. 블로킹을 이전처럼 하기 어려웠다. 유광우 사용설명서를 수정했다. 광우에게 우리 팀에서 할 몫을 확실하게 정리해 전달했다. 주전 세터와 비주전 세터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팀에서 선수에게 요구하는 부분이 있다. 광우가 이 부분에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 주전 리베로 정성민의 부상은 큰 변수였다.

“오은렬이 잘 버텨줬다. 사실 오은렬은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처음에는 선발 계획이 없었다. 이후 미팅을 거듭하면서 누락됐던 오은렬을 다시 평가하게 됐다. 직접 찾아가서 대학경기를 보고, 영상도 다시 돌려봤다. 최종적으로 영입 가능한 선수라는 수정 평가가 나왔다. 영입 직후 최부식 코치가 정성을 쏟았다. 정성민에 이어 팀의 두 번째 리베로로 키우려는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성민이가 허리 부상을 당해 갑자기 첫 번째 리베로 역할을 해내야 했다. 대학과 프로무대는 수준 차이가 있다. 이를 극복하는 건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옆에서 (곽)승석이와 (정)지석이가 많이 도와줬다.”

▲ 레프트 곽승석과 정지석은 팀의 보물이다. 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선수들인가. 

“이기는 경기를 만드는 선수들이다. 선수 유형을 보면 경기는 잘하고 승패는 지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경기를 평범하게 하는 것 같아도 중요한 순간 존재감을 드러내며 승리를 끌어내는 선수가 있다. 승석이와 지석이가 이런 유형이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것도 그렇다.” 

▲ 세터 한선수는 독보적인 존재다. 

“토스는 말할 것도 없고, 한선수가 있기 때문에 공격수들이 체력관리가 된다. 공격수 컨디션이 나빠도 감독이 크게 신경쓰지 않고 경기에 내보낼 수 있는 이유다. 한선수는 컨디션이 나쁜 선수에게 초반에는 볼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상대가 아예 마크하지 않을 정도가 되면 집중적으로 공을 준다. 다른 선수를 활용하면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선수가 공격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공격수 관리를 정말 잘한다. 분석도 아주 깊게 한다. 특히 직전 경기에 따라 상대 공략법을 새로 찾는다. 지금 물이 올라 있다.”

▲ 센터 포지션은 김규민 입대로 변화가 있다. 

“김규민이 잘 해주다 군대를 갔다. 포스트시즌은 진성태가 있어 문제가 없었다. 규민이는 공격이 화려한 선수고, 성태는 서브에서 비교우위가 있다. 우리 팀 센터는 공격보다 블로킹과 서브가 중요하다. 규민이가 없는 상황에서 진상헌과 진성태가 있지만 성태도 앞으로 군대를 가야 한다. 결국 조재영과 진지위 중 한 명을 끌어올려 바로 투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내는 것이 비시즌 가장 큰 과제다.”

▲ 이번 시즌 팀내 MVP와 기량발전상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제일 잘한 선수는 곽승석이다. 시즌 내내 기복없이 자기 몫을 다해줬다. 승석이는 리그에서 대체 불능 선수다. 말 한 마디도 무겁다. 코트 안에서 승석이가 한 마디 하면 그걸로 끝이다. 벤치에서도 무한 신뢰하고 있다. 내가 할 말을 승석이가 하면 더 좋은 효과가 날 때가 있다. 나도 편하다(웃음). 기량발전상은 오은렬이다. 군대만 아니라면 김규민도 생각이 난다.” 

▲ 현역 최고령 감독이다. 배구 인생 가운데 기억에 남는 순간이 여러 장면일 것 같다. 세 가지만 꼽는다면 언제인가.

“갑자기 세 가지만 꼽으려니 어렵다. 우선 1972년 뮌헨올림픽을 앞둔 예선전이 떠오른다. 프랑스에서 열렸는데 그 때 나는 대표팀 막내였다. 선배들이 북한에 승리한 기억이 선명하다. 공을 들고 다니는 후보였지만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두 번째는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다. 그 때는 내가 대표팀 주장이고 주전이었는데 대회장소인 이탈리아에 가기 전 일본에서 훈련을 하다 발목을 크게 다쳤다.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감독님께서 주장이니 함께가자고 하셨다. 한국이 놀라운 투혼을 펼치며 4강에 올랐다. 목발을 짚고도 행복했다. 세 번째는 이란 감독 시절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기억이다. 결승전 상대는 한국이었다.”

▲ 당시 한국 대표팀은 신치용 감독이었다.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벌써 18년 전이다. 사실 경기에 나설 때 지고 싶은 감독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제경기에서 한국 감독끼리 만나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가. 그 때 신치용 감독이 내 옆에 슬쩍 오더니 한국이 지면 8명이 군대를 가야 한다고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 당시 이란이 대회에서 상당히 선전했다.

“테헤란 공항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었다. 은메달은 수확이었다. 축하도 많이 받았지만 몇 시간 뿐이었다. 딱 3개월만 이란 대표팀을 지휘하기로 소속팀과 약속한 상황이었다. 오후 6시에 테헤란에 도착해 잠도 못자고 다음 날 새벽 비행기로 이탈리아로 향했다. 이란에선 더 있기를 원했지만 이탈리아 소속팀이 기다리고 있었다.”  

▲ 대한항공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영광이었고, 운도 따라줬다. 현대캐피탈과의 챔프전도 그랬고, 삼성화재와의 플레이오프도 그랬다. 선수들이 엄청난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수비에서 놀라울 정도의 경기력이 나왔다. 그 때 생각만하면 짜릿하다.”

▲ 이탈리아에서 감독 생활을 오래 하셨다. 진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 때 한국이 상당히 인상적인 플레이를 했다. 나는 발목 부상으로 뛰지 못했는데 귀국 이후 이탈리아 클럽 팀에서 대한배구협회로 연락이 왔다. 나를 지목해 스카우트 제안했다. 당시 실업팀인 종합화학 선수였는데 취업이 가능했지만 과감하게 이탈리아로 향했다. 선수로 2년을 뛰고, 코치 겸 감독이 됐다. 1982년 정식 감독이 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 감독을 하고 있다.

▲ 우리나라 대표팀 지휘봉을 든 시간도 길었다. 

“대표팀을 처음 지휘할 때 몇몇 팀에서 선수를 내주지 않아 대학생 전광인과 최홍석을 뽑아 국제대회에 나갔다. 그 때 쿠바를 이긴 기억이 있다. 지금 남자 대표팀은 2024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다. 4년 계획도 사실 긴 것이 아니다. 8년 계획까지 세워서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중국, 일본, 이란을 상대로 좋은 결과를 내야 올림픽 본선에 갈 수 있다.”

▲ 대표팀도 세대교체 플랜이 필요한 것 같다.

“동의한다. 분명한 건 세대교체는 6명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다. 6명을 다 바꾸는 건 혁명이다. 쉽지 않다. 세대교체는 한 명 혹은 두 명을 바꾸면서 전력을 유지 및 발전시키는 것이다. 계획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 대한항공은 팀 운영 시스템이 탄탄해 보인다.

“우리 팀 훈련 시스템은 이탈리아에서 감독을 할 때와 흡사하다. 그 연장선상으로 보면 된다. 외부에선 훈련을 적게 한다고 지적하는데 내 생각은 다르다. 훈련에 12명이 참가한다면 훈련이 끝날 때까지 12명이 쉬는 사람 없이 긴박하게 움직여야 한다. 모두가 집중하며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량을 밀도있게 가져가면서 훈련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자세나 교정이 필요하다면 야간에 보충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코치들도 항상 준비하고 있다.”

박기원 감독. (C)KOVO

▲ 감독 입장에서 부상변수가 가장 힘든 상황인 것 같다. 

“정확한 지적이다. 지금은 부상에 가장 큰 신경을 쓴다. 그래서 우리 팀은 체력담당자의 플랜을 우선시한다. 두 번째가 의무트레이너다. 의무 트레이너 4명 모두 아침회의에 참석한다. 세 번째로 기술적인 부분이다. 이는 코치들과 상의한다.”

▲ 매일 아침 정밀 회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전 7시 30분이면 11명이 모인다.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체크를 한다. 체력 상태와 부상 상태를 꼼꼼하게 살핀다. 개별 훈련량도 이 때 결정한다. 지구력 훈련 유무도 따진다. 점프를 시킬 때는 어느 수준까지 시킬 것인지도 아침에 결정한다. 대한항공 점보스의 하루 출발점이다.”

▲ 술을 끊은 것도 아침 회의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함인가.

“그렇다. 이전에는 술을 즐겼지만 대한항공에 부임하면서 끊었다. 배구만 생각하기 위해서다. 이제는 습관이 들었다. 유럽행 비행기에 탑승해도 와인 조차 입에 대지 않는다.”

▲ 배구인으로 남은 꿈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    

“배구 발전을 위한 일들을 생각하며 준비하고 있다. 자선전도 집필할 계획이 있고, 앞으로 배구연구소를 설립해 우리나라 배구발전에도 기여하고 싶다. 배구는 연구할 것이 정말 많다.”

▲ 배구 인생 전성기는 언제라고 생각하나.

“(잠시 생각하더니)배구인은 현장에 있을 때가 전성기다. 나는 지금이 전성기라 생각한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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