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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의 심장을 뛰게 만든 배구에 대한 열정
홍성욱 기자 | 2019.09.08 10:17
광주 4개구단 초청경기에서 활약하는 정대영. (C)KOVO

[스포츠타임스=광주, 홍성욱 기자] “처음에는 스물 셋에 은퇴할 줄 알았습니다.”

정대영(한국도로공사)은 양백여상을 졸업하고 실업배구 현대건설 그린폭스에 입단할 당시 선수 생활을 오래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일찍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았고, 배구 코트에 서기까지 훈련하는 과정 또한 혹독했다. 

그래도 실력을 인정받은 정대영은 대표팀과 소속팀에서 발군의 기량을 뽐냈다. 스파이크서브를 구사했고, 리시브 1위와 백어택 1위도 그의 몫이었다. 

정대영은 주저없이 “제 배구 기량의 전성기는 그 때 였습니다”라고 말했다. 

기량은 상승 곡선을 그리다 정점을 찍고 하강국면으로 접어든다. 부단한 노력만이 정점 부근을 오래 유지하고 하강 곡선도 완만하게 만든다. 

정대영은 이를 열정과 훈련으로 커버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 나이 서른 아홉에도 현역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팀내 주전은 물론이고, 대표팀에서도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여자프로배구 4개구단 초청경기 둘째 날 경기가 펼쳐진 광주 빛고을체육관. 관중석에 꽉 들어찬 관중들은 정대영의 전광석화 속공이 연속으로 성공되자 환호했다. 살아있는 백전노장의 플레이를 두 눈으로 확인한 것. 

경기 후 정대영은 “제가 지금까지 배구를 하고 있는 원동력은 출산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은 선수 생활을 단절하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정대영은 출산으로 한 시즌을 쉬었다. 그 시기는 정대영의 배구 인생을 둘로 나눴다. 열정이 마음에서 꿈틀거렸고, 심장을 뛰게 했다. 

그는 “쉬면서 배구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코트에 서야하는지를 생각했어요. 그 힘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복귀는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다시 몸을 만들어야 했고, 나이라는 한계와 싸워야 했다. 팀 성적이 2년 연속 하위권에 머물면서 정대영은 이를 악물었다. 

정대영은 “여기서 제가 포기한다면 복귀하고 싶은 선수들, 그리고 이후에도 출산하고 돌아오길 희망하는 선수들의 길을 가로막는 것 같아서 정말 마음을 독하게 먹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강한 의지를 품고 훈련에 매진한 정대영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이했다. 팀을 정상권에 올려놓았고, 2012 런던올림픽에 출전해 4강이라는 성과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정대영은 GS칼텍스의 챔피언 등극을 이끈 이후 한국도로공사로 이적해 팀의 숙원이던 통합 우승의 주역이 됐다. 

정대영은 “기량은 실업과 프로 초창기가 전성기였고, 런던올림픽은 잊지 못할 대회였습니다. 도로공사에서 첫 우승을 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저는 지난 시즌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힘겨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로 뭉쳐 시즌을 마무리했기 때문이죠. 정말 똘똘뭉쳐서 사력을 다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대영은 이제 배구선수 생활의 마무리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아직 모른다. 

배구에 대한 열정이 새롭게 생성되던 시절 배 속에서 엄마와 교감하던 아기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배구 선수 생활을 시작할 예정. 

딸 보민이는 “엄마, 선수생활 하고 싶을 때까지 해”라고 응원한다. 정대영도 마음이 가볍다. 

그는 “할 수 있을 때까지 최고의 자리에 머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를 뛰어넘는 후배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포지션을 바꾸고, 배구 스타일을 바꾸면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움켜쥔 정대영. 그의 열정은 아직도 꿈틀거리고 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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