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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피플] ‘박사 감독’ 김성용, 20년 만에 야탑고를 정상으로 이끈 비결
홍성욱 기자 | 2017.09.05 06:04
김성용 감독. (C)유진환 작가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2017년 9월 1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막을 내린 45회 봉황대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분당 야탑고는 서울 충암고에 2-1로 승리하며 마침내 정상에 등극했다.

1997년 11월 4일 창단식을 거행한지 무려 20년이 다 돼 맛보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 창단 감독이던 스물아홉 청년 김성용은 어느덧 쉰을 바라보는 중년으로 변해 있었다. 혈기왕성하던 부임 초기와 달리 이제는 노련한 감독의 모습이었다.

우승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 저녁 강남의 노천 카페에서 김 감독과 마주했다.

▲ 막상 우승을 하고 나니 어떤 기분이 들던가.

“요란스럽게 즐겁기 보다는 허탈한 마음도 함께 찾아왔다. 우승만을 위해 달려온 길은 아니었지만 또 하나의 목표에 오르고 나니 그런 모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을 손에 쥐는 순간 축하메시지가 500통이 넘게 와있었다. 그 때가 진짜 우승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 재학생들이 스탠드에 자리해 응원전을 펼쳤다. 우승의 순간 함성이 대단했다.

“결승전 때마다 재학생들이 함께 했다. 매번 준우승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결과가 달랐다. 야탑고에 다니는 게 자랑스럽다는 한 학생의 얘기를 들었을 때 마음속이 찡했다. 이사장님과 교직원들의 성원 또한 대단했다. 다시 한 번 모든 ‘야탑인’들에게 감사드린다.”

▲ 봉황기 시작 전에 어느 정도 성적을 예상했었나.

“처음에는 8강을 생각했다. 그 정도는 우리 실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8강에서 서울고를 이기면서 더 큰 목표를 그렸다.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 1학년이 주축인 구성이라 놀라웠다. 결단이 필요했을 것 같다.

“야탑고를 지휘하고 결승전에는 몇 차례 올라갔지만 이번처럼 1학년 주축 팀은 처음이었다. 3학년이 3명이었고, 2학년도 많지 않았다. 1학년 위주였다. 사실 고등학교 야구는 프로지명과 입시를 위한 야구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고학년 위주로 경기에 나간다. 이러면 100% 전력을 다할 수 없다. 이번 대회는 선수들에게 베스트로 가자고 얘기했다. 3학년들도 이해하면서 팀 케미스트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야탑은 올해보다 내년이, 내년보다 후년이 더 기대되는 팀이다.”

▲ 봉황기 우승의 원동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승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거기에 운도 따라야 한다. 선수들이 자신감을 갖고 임했고, 나 역시 그랬다. 시즌 초반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신민혁을 준결승에 내지 않고, 아낀 것 또한 작용했다. 결승전 8회에 구원 투입하면서 확신이 들었다. 1학년 안인산의 역할 또한 막중했다.”

▲ 20년을 야탑고에서만 근속했다. 비결이 궁금하다.

“(웃음을 보이며)학교에서 나를 믿어줬다. 그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고비도 수없이 많았다. 특히 창단 초기에 선수수급이 어려워 학교에서 야구부 지원 여부를 놓고 고민하기도 했던 시기가 있었다. 2002년까지가 정말 힘들었다. 윤석민(KIA)과 오재원(두산) 등이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 오재원은 당시에도 승부욕이 강했었나.

“남다른 승부근성이 있었다. 특이하기도 했다. 재원이가 재학시절에는 유격수였는데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남기고 2루 땅볼이 나오자 그라운드에서 기도를 했다. 이기려는 열망이 대단했다. 경기에서 지고난 날이면 쉬라고 했는데도 따로 특타를 치면서 훈련했다. 정도 깊다. 잠시 내가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이 녀석이 어떻게 알았는지 저녁 때 찾아와 밤을 세워 간호를 하고 아침에 돌아간 기억이 선명하다.”

▲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인 윤석민은 최근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고2 후반부부터 정말 잘했던 윤석민이다.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대단했다. 요즘은 몸도 완전치 않고, 마음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극복할 것이라 믿는다. 분명 좋은 모습을 보일 것이다.”

▲ 최근 김하성(넥센)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보기만 해도 대견하다. 사실 하성이는 야탑고에 올 때도 사연이 있었다. 입학하기로 한 선수가 다른 학교로 가면서 대신 들어왔다. 부천중학교 감독이 키는 작지만 좋은 선수라고 추천했다. 동계 전지훈련을 갔을 때, 3학년에 올라가는 내야수가 발목을 삐었다. 하성이가 그 자리를 꿰차더니 3년 내내 주전을 했다. 기본기가 좋고, 멘탈 또한 강한 선수다. 전지훈련지에서 캐낸 보물이었다.”

▲ 박효준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뉴욕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있다.

“효준이는 그런 각오를 분명 하고 갔다. 꿈이 확실했다. 메이저리그였다. 떠날 때부터 언어적인 어려움에 부모와 떨어져 사는 외로움이 섞여있을 것이다. 힘들겠지만 이 또한 이겨낼 선수라고 생각한다.”

▲ 처음 감독을 했을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나.

“돌이켜보면 감독 초기에는 선수를 위한 야구가 아니었다. 내 열정이 앞섰다. 내가 열심히 하면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서 새벽 1시까지 훈련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 얼마 전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승보다 더 힘든 게 박사학위를 받는 과정이었다. 20년째 감독을 하고 있지만 감독이라는 자리의 무게와 한계를 일찍 느꼈다. 내가 가진 게 바닥을 드러냈다.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훈련을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했다. 2012년 단국대학교 특수체육 석사과정을 시작해 2014년 2학기 때 박사과정으로 진학했고, 지난 8월 24일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처음 출전한 대회가 봉황기였다.”

▲ 박사학위를 받고 첫 대회에서 우승이라니 더 기뻤을 것 같다.

“내 목표는 좋은 선수를 프로와 대학에 많이 배출하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선수들이 프로나 대학에 가서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야탑에서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학과 프로에 가서 못한다면 나에게는 치욕이다. 결국 과학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이런 부분 때문이었다. 결실을 맺고 보니 더 뜻이 깊다.”

▲ 요즘은 선수들이 수업에 들어간다. 훈련 시간도 줄었을 법 하다.

“2년 전부터 주말리그가 생기면서 방과 후에 훈련이 시작된다. 제약이 늘고, 훈련 시간은 줄었다. 효율적으로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트레이닝이나 스포츠영양학, 스포츠멘탈과 역학을 접목시켜 시간표를 짠다.”

▲ 능동적인 부분 또한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웨이트 트레이닝 때 얼마를 들었는지도 본인이 작성한다. 습관을 들이고 움직여야 몸도 올라오고 실력도 늘어난다. 20년 전과는 모든 고교야구 환경이 변했다. 선수들의 체형도 커졌다. 체력이 많이 향상되면서 이전에 가르친 기슬이나 몸 상태와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일부 선수들의 근력은 프로 선수에 버금간다. 근력 향상은 스피드나 파워 향상으로 이어진다.”

▲ 감독의 역할도 달라졌다.

“나는 코디네이터라고 생각한다. 중복되거나 흐트러짐 없이 모든 상황이 이뤄지도록 최종 조율 한다. 세부적인 역할은 코치들이 선수들과 부딪히며 하고 있다. 박건민 수석코치, 주태완 수비코치, 나현수 투수코치가 공신이다. 이들에게 우승의 공을 돌리고 싶다.”

▲ 우승을 했으니 더 욕심이 커질 것 같다.

“우승을 하니 좋긴 좋더라. 해온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우승도 더 하고 싶긴 하다(웃음).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좋은 선수를 프로와 대학에 보내기 위해 혼신을 다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다른 학교보다 부상이 적다는 데 자부심이 있다. 아마추어 지도자의 가이드라인과 지표를 만드는 게 남은 목표이자 사명이다.”

야탑고 우승 직후 기념 촬영. (C)김성용 감독 제공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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