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단독코너 ST피플
[ST피플] ‘굿바이’ 후인정, “행복하게 배구하다 갑니다”
김가을 기자 | 2016.01.22 07:30
은퇴 후 한국전력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인정. (C) 스포츠타임스 DB

[스포츠타임스=김가을 기자] “두 번 은퇴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네요.”

이제는 ‘전(前) 배구선수’가 된 후인정 한국전력 코치가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1997년 현대자동차서비스(현 현대캐피탈)를 시작으로 실업과 프로 리그를 거쳐 19년 동안 코트를 누빈 후인정이 은퇴를 선언했다. 후인정은 지난달 28일을 끝으로 길었던 배구 선수 인생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그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배구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은퇴와 동시에 트레이닝 코치로 보직을 옮긴 후인정은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후배들의 훈련을 돕고 있다. 후인정은 “선수 때보다 더 바쁘다. 베테랑이 된 뒤에는 야간 훈련을 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후배들이 야간에 나와 훈련할 때 옆에서 볼을 때려준다”며 웃었다.

▲ 처음과 최초를 달고 다니는 사나이

후인정의 은퇴는 다소 갑작스러웠다. 소속 팀 한국전력이 대한항공과 트레이드를 하면서 선수 엔트리 정원이 초과했고, 그 과정에서 후인정은 후배의 앞길을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시즌 중 은퇴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후인정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두 번째 은퇴다 보니 여러모로 준비가 돼 있었다”고 말했다.

V-리그 남자부를 통틀어 지금껏 두 번 은퇴한 선수는 후인정이 유일하다. 후인정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2012-2013시즌이 끝난 뒤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얻었지만, 재계약에 실패하며 은퇴했다.

배구 공을 놓고 잠시 방황하던 후인정은 2013-2014시즌을 앞두고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의 부름을 받아 다시 한 번 코트를 밟았다. 이후 지난달 28일까지 한국전력에서 최고 선임자로 후배들과 함께 경기에 나섰다.

사실 후인정에게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따라다닌다. 대만 화교던 후인정은 만 20세가 되던 1995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동시에 ‘수원 후 씨’의 시조가 됐다. 귀화 직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후인정은 배구 선수 중 처음으로 귀화 국가대표가 됐다.

실업에서 프로로 바뀐 뒤에는 더 많은 ‘최초’ 기록을 써 내려갔다. 후인정은 2005년 프로배구 첫해 연봉킹과 올스타전 팬투표 1위, 정규리그 MVP 등 각종 첫 페이지에 이름을 남겼다.

후인정은 “처음 세운 기록이 많다는 것은 기분 좋으면서도 쑥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처음이라서 더욱 기억에 남는 장면도 있다.

그는 “배구 인생을 돌아봤을 때 프로 원년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전에도 좋았던 기억은 많다. 그러나 우승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고 말했다.

후인정은 대학 시절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했지만, 실업 리그에서는 삼성화재에 밀려 우승 문턱을 넘지 못 했다. 그는 “실업 때는 서른 무렵이면 은퇴했다. ‘우승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은퇴하는 것 아닌가’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프로 우승이 더욱 기뻤다”고 털어놨다.

▲ ‘전지훈련 제외’... 후인정을 일으킨 터닝포인트

국가대표부터 리그 MVP까지 거머쥔 후인정은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선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그는 “청소년 시절에는 특출난 선수가 아니었다. 운 좋게 경기대에 진학했는데, 입학 후에도 경기에 나설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과 고등학교의 실력 차이는 컸다. ‘팀에 민폐는 끼치지 말자’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훈련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노력으로 실력 향상을 이룬 후인정은 대학 졸업 후 실업 무대를 누비며 팀 내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후인정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고 훈련에 나섰다.

후인정은 “1999년 시드니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무릎 수술을 했다. 그 뒤로는 시즌 끝나고 새 시즌 전까지는 무릎 재활만 했다. 그런데 프로 되던 해 소속 팀 새 사령탑으로 오신 김호철 감독님은 팀 훈련에 엄격하셨다”고 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선수들을 모아 놓고 내게 ‘운동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내 사정을 말씀 드렸는데, 감독님께서 일본 전지훈련에서 빠지고 개인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충격이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혼자 남은 후인정은 굳은 각오를 다졌다. 그는 “선수들은 전지훈련을 갔고, 식사 담당 직원들은 휴가를 떠났다. 체육관에 혼자 남아 열흘 동안 밥 시켜먹으면서 독기가 생겼다. 그 후로 4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했다”며 당시를 돌아봤다.

▲ 올림픽과 MVP... “행복하게 배구하다 갑니다”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후인정은 20년 가까이 코트를 누비는 기쁨을 누렸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하기도 했고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했다.

후인정은 “힘든 때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선수 생활을 했다. 배구 선수로서 나갈 수 있는 국제 대회는 모두 경험한 것 같다. 점수로 따지면 100점 만점에 85점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몸 관리를 조금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돌아보면 나는 참 행복하게 배구하다 은퇴한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억만 가지고 선수 생활을 접는다”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배구선수 출신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레 배구를 접했던 후인정은 30년 가까이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앞으로도 배구 관련 일을 하면서 행복한 길을 걷고 싶다. 끝은 어딘지 모르겠지만, 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겠다”며 눈빛을 반짝였다.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후인정은 제2의 배구 인생을 향해 다시 한 번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은퇴 후 한국전력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인정. (C) 스포츠타임스 DB

김가을 기자  spec2@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가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포토존
PREV NEXT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