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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피플] 야구 대안학교를 꿈꾸는 ‘저니맨 최익성’
홍성욱 | 2015.07.20 09:32



[스포츠타임스=홍성욱 선임기자] 저니맨(Journey Man)’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다. 바로 최익성이다. 2005년 국내 프로야구를 떠난 그는 6번이나 팀을 옮겼다. 아직 이 기록을 넘보는 선수가 없다.

 

1994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던 그는 1999년 한화로 이적해 한국시리즈에서 홈런을 터뜨리며 팀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방랑은 계속됐다. 2000LG트윈스로 옮겼다가 2001년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타자로 기록된 그는 KIA 타이거즈 팀 1호 홈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2년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했던 최익성은 2004년 친정팀 삼성으로 복귀했지만 이내 짐을 쌌다. 2005SK와이번스를 끝으로 굴곡의 KBO리그 역사를 마감했다.

 

그의 인생 2막은 거침없다. ‘타협은 없다는 좌우명처럼 자신감 하나로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야구대안학교를 위한 교두보인 저니맨야구육성사관학교를 서울 구의동에 확장 개관한 그를 만나 살아온 얘기와 살아갈 얘기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눴다. <편집자주>

- ‘저니맨육성사관학교를 확장해 다시 열었다. 지하부터 옥상까지 4층 빌딩 전체를 쓰고 있다. 큰 그림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 저니맨육성사관학교는 프로야구 선수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었다. 사관학교에서 생도가 배출되듯, 육성사관학교에서 프로야구 선수를 지속적으로 배출해 한국프로야구를 풍요롭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2012년 신사동에서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초중고 선수들을 키우고, 프로에 가지 못한 선수나 방출 선수들의 재입단을 도왔다. 이제는 이를 기반으로 야구 대안학교를 만들려는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왔다.”

대안학교는 야구만을 위한 것인가.

꿈은 스포츠 대안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그 첫 번째로 야구 대안학교를 설립하려 한다. 점차적으로 모든 스포츠로 확대한다는 밑그림이다. 이를 위해 전국의 대안학교를 돌아봤다. 빠르면 7월부터 위탁 비인가 학교로 시작해 내년 교육청 인가를 받기 위한 단계별 진행을 계획하고 있다.”

- 힘든 길을 개척하면서 가고 있다.

야구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지만 야구로 인해 받고 누린 삶이었기에 야구에 되돌려주고 싶었다.”

- 서울경찰청소년야구리그를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 됐다. 어떻게 시작됐나.

“2년 전에 사관학교 재능기부를 시작했다. 그 때 동대문경찰서와 연결됐다. 관할구역 내 문제 청소년 교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내가 직접 학생들과 상담했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다. 조금 다를 뿐이라고 했다. 운동장에 모여 야구로 풀자고 했다. 다들 웃으며 시작했다. 작년에 4개 경찰서로 확대됐다. 종암, 광진, 성동서가 합류했다.”

재능기부가 리그까지 확대된 건가.

그렇다. 4개 팀이 생기고 나니 작년 말에 본청에서 연락이 왔다. 들어갔더니 대부분의 재능기부가 3~4개월쯤 지나면 마무리되는데 2년 동안 도움 없이 우직하게 밀고 가는 사람은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수많은 보고서가 서울 본청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다문화 가정이나 문제 청소년들 대부분이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통해 변하고 있었다. 4월에 양천, 수서, 송파, 관악서까지 확대돼 8개 팀이 서울경찰청소년야구리그를 시작하게 됐다.”

이젠 형사들과 아주 친할 것 같다.

처음엔 커뮤니케이션이 매끄럽지 않기도 했지만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지금은 가까워진 사람들이 많다. 신뢰가 쌓인 거다. 형사들은 이제 자기 팀 선수 스카우트가 됐다. 사회인 야구를 하는 사람들은 조용히 와서 스윙폼 교정을 요청하기도 한다(웃음). 리그가 열리는 날에는 서장님이 직접 간식을 사들고 오실 정도로 서별로 경쟁이 붙은 상황이다.”

리그에 선수가 얼마나 있나.

“8개 팀에 250명이 조금 넘는다. 야구에 재능 있는 선수들도 있어 눈여겨보고 있다.”

8개 팀이면 활성화된 리그다.

4월 개막식 때 구은서 서울경찰청장과 8개 경찰서장들이 총출동하셨다. 학부모들도 자리했다. 의장대가 축포를 쏠 정도로 성대한 개막 행사였다. KBO에서도 구본능 총재와 허구연 야구발전위원회 위원장께서 오셔서 격려해 주시며 흡족해 하셨다. 은퇴선수협의회 이순철 회장도 자리를 빛내주셨고, 용품 지원을 해준 선수협을 대표해 박충식 사무총장도 함께 자리했다.”

사실 구은서 청장님이 경찰청 야구단 구단주인지 그날 알았다. 앞으로 전국 경찰서로 야구팀이 늘어난다면 야구를 위해, 또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선수들의 일자리창출도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선수 때 얘기 좀 해보자. 가장 생각나는 장면이 궁금하다.

삼성 시절 이상훈에게 끝내기를 때린 것이 기억난다. 99년 한국시리즈 1차전 때 가득염을 상대로 결승 홈런을 터뜨린 것도 생각난다. 그해 득염이 형에게 시즌에서 2타수 2홈런이었는데 한국시리즈 홈런까지 3타수 3홈런이었다.”

팀을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여정일 것 같다.

그 땐 싫었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당시에는 싫었지만 나는 인생을 찾아 떠났다.”

 

- 저니맨은 숙명인가. 사관학교 앞에 저니맨을 붙였다.

저니맨은 내가 아닌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저니맨이 결코 패배자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 삼성에서 한화로 이적할 때만 해도 저니맨이 될 줄 몰랐을 것 같다.

내 인생은 중학교 시절부터 저니맨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다니던 신라중학교에 야구부가 없어 두 차례나 전학을 갔다. 결국 그 때부터 저니맨 운명이었던 것 같다.”

- 2005SK를 끝으로 국내무대를 마무리한 뒤 미국에 갔다.

내 인생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과 차를 팔고 무작정 건너갔다. 미국과 멕시코를 돌며 야구를 계속하려했다. 지역야구를 찾아다녔고, 심지어 동네야구가 펼쳐지면 함께 뛰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러기를 2. 결국 내 인생의 선수생활을 접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돌아와보니 상황이 어땠나.

무일푼으로 공항에 내렸다. 2007년이었다. 노숙하는 처지였다. 자신감 하나만 충만했을 뿐이다. 지인 사무실에 퇴근하고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잠을 청했고, 때론 창고에서 잠을 자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했다. 그러다 우연히 MBC 야구 드라마에 섭외되며 탤런트의 길로 잠시 나서게 됐다.”

- ‘저니맨이란 책도 펴냈다.

내 삶을 정리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 이게 성공스토리인지 평가받고 싶었다. 아무도 책을 내주려하지 않아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내 관점에서 내 인생은 성공이다. 가끔씩 강연 부탁이 들어온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13년 동안 대기업 7곳에 취업한 사람이 실패자냐고. 알고보니 한 번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삼성에 두 번이나 들어간 사람이 나였다. 난 능력자였다.”



2012년에 저니맨육성사관학교를 처음 시작했다.

그 해 9월 신사동에서 시작했다. 크라제버거 민정환 대표와 동기인 이숭용(kt 코치), 그리고 어은실 박사의 배려로 저니맨 사관학교가 시작됐다. 이 자리를 빌어 그 분들게 감사드린다. 그 때 윤동건(kt) 민경수(SK) 이원재(kt) 최우석(한화) 4명에게 프로 유니폼을 입혔다. 일본에서 KIA로 복귀한 이범호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린 직후 찾아왔다. 3개월 동안 나와 어박사가 매일 붙었다. 범호가 지금 뛰고 있는 모습 자체가 나에게는 감동이다.”

저니맨사관학교를 확장 이전했다.

구의동에 건물을 빌려 통째로 쓴다. 지하 1층에 실내훈련장과 분석실을 뒀고, 1층은 건강카페로 오픈했다. 2층은 재활과 트레이닝 공간이다. 3층은 사무실과 회의실이 있다. 4층은 선수들의 휴게실이고, 옥상에 야외훈련장을 만들었다. 지난 4월말 계약해서 5월부터 손수 인테리어를 했다. 자재를 고르고 시공하고 하다보니 이제 집을 하나 지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층 카페가 독특한 컨셉이다.

이름이 저니맨건강카페다. 아침 7시부터 야구중계가 끝날 때까지 운영한다. 일반인들도 야구를 보면서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나도 자주 내려간다. 건강한 음식을 나누며 소통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판매하는 유산균음료는 2년 전부터 만들어왔다. 우리 학생들에게 직접 배양해 먹이고 있는 걸 카페에서 판매한다.”



- “타협은 없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계단에 보인다.

좋아하는 말이다. 타협하는 순간, 무너진다. 내 인생 결코 타협은 없다.”

그는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모든 걸 손수 해나가며 세상과 맞섰다. <span style="mso-fareast-font-family

홍성욱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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