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농구 KBL
‘여왕의 귀환’, 박신자 여사 2일 귀국…박신자컵 개막식 참석
홍성욱 | 2015.07.02 12:12


[스포츠타임스=홍성욱 기자] ‘여왕의 귀환.’

이 땅에 여자농구의 씨가 뿌려진 것은 19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105년째 역사가 이어지고 있는 것. 세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 여자 농구사에 가장 큰 인물로 기억되는 선수는 박신자.

농구 하면 올드팬들은 남자 신동파와 여자 박신자를 떠올렸다. WKBL(한국여자프로농구연맹)2015년 여름리그를 박신자컵 서머리그로 명명했다. 레전드를 기념하며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1941년생인 박신자 여사는 1953년 숙명여중 입학과 함께 농구를 시작해 기량이 쑥쑥 자라 숙명여고 시절에는 이미 초고교급 선수였다. 그를 영입하기 위해 한국은행,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농업은행(NH농협)이 벌인 치열한 3파전은 여자 농구 스카우트 전쟁의 시초였다.

숙명여고 전성기에 이어 상업은행 전성기를 열어젖힌 그는 대한민국 여자 농구 전성기까지 만들어내며 전세계에 한국 여자농구의 위상을 알렸다. 1967년 체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박신자를 앞세워 2위를 차지했다. 그는 기자단 투표 결과 최다인 56표를 얻어 최다득표로 월드베스트5’에 들었다.

귀국 이후 김포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펼쳐진 카페레이드 행사에는 환영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금은 헐린 서울운동장 야구장(동대문구장)서 환영식이 열렸고, 관중석에 2만 여명이 몰릴 정도로 대단한 경사였다.

박신자는 1967년 일본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석해 개최국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거머쥐었고, 그 해 112일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동양인 최초로 세계여자농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그는 학구파로도 유명했다. 숙명여대 영문과와 이화여대 대학원 체육학과를 마쳤고, 주한미군 문관인 브래드너씨와 결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메사추세츠주 스피링필드 대학원에서 체육학을 전공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1982년에 신용보증기금 여자 농구단 창단 감독을 맡았던 박신자 여사는 지난 1999WKBL 출범 때 시구를 맡았었고, 20년 뒤인 20093월 등촌동 연맹 사옥개관식 때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번 2일 귀국은 6일 개막되는 박신자컵 1회 대회 참석을 위해서다. 3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신선우 총재 취임식 때도 참석한다.

레전드 박신자의 귀환. 한국 여자 농구가 제2의 르네상스를 열기 위한 중요한 시점에서 이뤄진 그의 방문과 박신자컵의 탄생은 새로운 여자농구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사진=1967년 귀국 환영대회 때의 박신자. WKBL 제공]

 

홍성욱  mark@thesportstimes.co.kr

<저작권자 © 스포츠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홍성욱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