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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피플] KBO최초 2500경기 김태선 기록위원 “8회까지 노히트노런이 제일 떨려요”
홍성욱 | 2015.06.30 08:13



[스포츠타임스=홍성욱 선임기자]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는 순간, 모든 이들의 시선은 마운드를 향한다. 백스톱 뒤편 세 평 남짓한 기록실도 마찬가지다.

1990년 수습기록원을 시작으로 26년째 작은 공간에서 공식기록지를 써내려온 김태선 위원이 지난 23일 대전 한화-넥센전에서 2500경기에 도달했다. KBO 리그 최초다.

이십대 중반의 청년은 어느새 쉰을 넘긴 중년이 됐다. 청춘을 기록지와 함께한 그를 양재동 KBO에서 만났다. 날씨 또한 화창했다. 사반세기 기록 얘기를 풀어내려는 그는 입대한 둘째의 자대배치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자상한 아비였다.

2500경기를 최초로 돌파했다.

“1호라는 건 기쁜 일이지만 현역에 계신 선배 세 분(김재권, 김상영, 윤병웅 전 기록위원장) 보다 먼저 하게 돼 미안한 마음도 있다. 그 선배들은 위원장을 지내면서 게임에 많이 들어가지 못했다.”

1군 데뷔 때 기억이 남아있을 것 같다.

생생하다. 1992825일 잠실 OB와 태평양의 경기였다. 경기 전 일찍 야구장에 도착해 오더를 체크하고 펜을 들었는데 수전증에 걸린 사람처럼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 해 11월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두 이벤트를 비교해 보면 상대가 안될 만큼 1군 데뷔 때 긴장감이 최고조였다.”

요즘도 긴장감을 느낄 때가 있나.

데뷔 때와는 달라졌다. 그렇지만 시즌 개막일은 긴장하려고 한다. 첫 날부터 기록지에 수정액을 쓰는 것을 내 스스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2500경기에 도달한 날도 긴장됐다. 기념패에 기록지 원본을 동판으로 뜬다고 했기에 깨끗하게 쓰고 싶었다.”

선수시절 투수와 외야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충암고에서 야구를 했다. 아버지는 반대하셨지만 설득했다. 1 때까지는 김성근 감독님께 배웠고, 2 때 한동화 감독님이 오셨다. 3 때 전국대회 4강에 들지 못해 대학진학 길이 막혔다. 실업에 가려다 3개월 학원을 다녀 대학에 들어갔다.”

기록위원의 길은 어떤 인연으로 시작됐나.

대학 졸업 직후 우연히 KBO 심판 모집 공고를 봤다. 후배로부터 연락도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떨어졌는데 규칙 시험에서 성적이 좋았었다. 김광철 당시 위원장님께서 기록강습회에 등록하라고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시험을 봐 들어오게 됐다. 나중에 김 위원장님이 넌 심판할 얼굴이 아니야. 그 얼굴에 코끼리 형님(김응용 감독)이 나와서 항의하면 받아치겠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시기도 했다(웃음).”

기록위원의 가장 큰 일은 기록지 작성도 있지만 안타와 에러를 판단하는 일인 것 같다.

그렇다. 그 순간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8회까지 노히트노런 상황이 될 때 제일 떨린다. 안타를 줘도 에러를 줘도 되는 애매한 타구가 나오면 무얼 줘야 할지 평소보다 훨씬 고민하게 된다. 반대로 심판은 8회까지 퍼펙트일 때 힘들다.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 하나에 대기록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어떤 경기였나.

두 경기가 있다. 우선 1997523일 대전 한화-OB전은 정민철이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던 경기였다. 82사 후 스트라이크아읏낫아웃 상황에서 패스트볼로 진루를 허용하지 않았더라면 퍼펙트게임 대기록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한화 포수 강인권이 공을 놓쳤다. 타자였던 심정수도 공이 빠진 걸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뛰었다.”

다른 한 경기는 2000418일 잠실 LG와 롯데의 경기다. 임수혁이 쓰러진 가슴 아픈 날이다. 임수혁이 2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유격수 땅볼을 쳤는데 유격수 유지현이 3-유간 깊은 타구를 잡았지만 1루에서 세이프됐다. 유격수 실책을 줬는데 수혁이가 정말 열심히 뛰었다. 이후 2루로 진루해 견제구가 오자 귀루를 하는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요즘처럼 응급구조사가 있고, 의료시스템이 받쳐줬다면 살릴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야간경기가 많다. 기록원의 하루는 어떻게 이뤄지나.

경기가 끝난 뒤 저녁 식사를 하면 자정을 넘긴다. 소화를 시킨 후에 잠이 든다. 보통 3시쯤이다. 자연스레 기상 시간도 10시쯤으로 늦어진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에는 야구장에 도착한다. 보통 더 일찍가게 된다.”

기록위원실에 망원경이 놓여있는 걸 봤다.

요즘은 필수다. SK는 등번호만 있고 선수 이름이 없다. 한화는 원정 유니폼 색깔 때문에 등번호와 이름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선수 교체시 무전기로 심판과 대화를 하는데 관중의 환호와 앰프소리가 섞이면 잘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확인한다.

짐이 제법 될 것 같다. 기차를 타고 원정길에 나서나.

노트북과 기록지는 기본이고, 규칙서들을 넣고 다닌다. 앞서 언급한 망원경과 옷가지를 합하면 무거운 가방 2개가 출장길에 앞서 꾸려진다. 가끔은 기차를 타지만 거의 운전을 하고 다닌다. 1년에 4만 킬로를 넘긴다. KBO 입사 후 100만킬로 넘게 다녔다. 차도 4대째다.”

TV에 잡히는 구장이 있다.

마산과 잠실이 대표적이다. 마산은 기록원 땀구멍까지 보인다고 할 정도다. 어떤 야구팬들은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 석고상 같다고 한다. 사실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7월까지 윤치원 기록위원과 파트너인데 무릎을 묶는 각대를 사서 쓴다. 이걸 쓰면 허리가 펴지면서 집중이 잘 된다. 나태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기록실 위치는 어느 구장이 가장 좋은가.

지금은 헐린 동대문구장이다. 2층 오른쪽에 기록실이 있었다. 그 자리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타자주자가 1루로 뛰는 모습을 가장 잘 볼 수 있고, 포수가 포구를 어떻게 했는지도 잘 보인다. 아울러 내야땅볼 때 불규칙 바운드도 가장 판단하기 좋은 위치다. 대구구장은 2층 왼쪽에 기록실이 있다. 현재 있는 구장 가운데 가장 좋은 위치지만 올해까지만 사용한다.”

기록 때문에 항의하러 오는 선수들을 여러 번 봤다.

민감해하는 선수들이 있다. 잘 얘기해서 감정을 푼다. 잘 오지 않는 선수가 기록실을 찾아오면 비디오로 리플레이를 하기도 한다. 조명타워에 공이 들어갔을 때 아무런 제스처가 없는 선수가 나중에 와서 타워에 들어갔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기록위원의 안타 에러 판정은 비디오판독 대상도 아니고 대상도 될 수 없다.

그렇다. 안타 에러 판정은 1초에서 2초 이내 나온다. 요즘은 기록원이 두 명이니(한 명은 전산 기록 담당) 둘이서 수신호를 주고받기도 한다. 안타라면 엄지를 위로, 에러라면 엄지를 아래로 내리는 식이다. 불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비디오를 보고 100명에게 물었을 때 5149가 나온다면 51이 정답이라 할 수 있을까. 아웃과 세이프 같은 판독상황과는 다르다.”

공식기록원의 매력은 무엇인가.

이승엽, 정민철, 양준혁 등 선수들의 플레이를 가까이에서 보고 그 선수들의 성적을 내 손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매력이자 사명감이다. 연봉 15억원을 받는 선수의 타구를 판정하는 일이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힘든 일이지만 운동장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자부심이 있다.”

3000경기에 대한 욕심이 생길 것 같다.

장훈 선생님의 3085안타 기록처럼 3085경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현재 추세로는 KBO 정년이 늘어나야 가능할 것 같다.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잠실야구장을 향해 떠났다. 두툼한 가방을 든 그의 뒷모습이 멀어져갔다.

“2500게임 동안 선입견 없이 기록해온 것이 저의 자부심입니다.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홍성욱 기자 mark@thesportstimes.co.kr

[사진=김태선 기록위원과 그가 작성한 공식기록지. 홍성욱 기자]

 

홍성욱  mark@thesports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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